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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3장. 국공립대학화 운동 및 교육관계법 개악저지 투쟁
저자 박정원(상지대학교)


53장. 국공립대학화 운동 및 교육관계법 개악저지 투쟁

 

                                                                                                                          박정원(상지대)

 

어지러운 상황전개가 3개월가량 계속되는 가운데 ‘상지대 도립화를 위한 범시민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구 재단과 투쟁할 당시부터 국공립화 방안이 논의되긴 하였지만, 김모 교수가 6월 1일의 교수협의회 총회에서 재차 발의하여 도립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경험에서 보면 현재의 사립학교법체제에서 비리사학이 완전한 공공성을 영구히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리사학은 국공립대학화하는 것이 공공성 확보 방안으로서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름부터 지역의 인사들을 만나서 상지대 도립화를 추진하는 배경과 목적, 그리고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을 설명하면서 동참과 지원을 호소했다. 맨 먼저 발 벗고 나선 분은 당시 최고령 국회의원이었던 고 문창모 박사였다. 지역사회의 신임과 존경이 두터운 문박사의 동참으로 많은 지역의 인사들이 도립화 추진 운동에 함께 하였다. 김범일 가나안 농군학교 이사장, 백완기 전 로타리클럽 총재, 김홍렬 전 원주고교장, 안광훈 예총원주지부장, 한창희 21세기 정책연구소장 등 지역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상임대표는 문창모 박사가, 사무총장은 내가 맡았다.

 

도립화 범시민추진위는 1차 사업으로 시민서명 운동을 전개하였다. 한 달여 만에 460명의 지역인사들이 추진위원으로 동참했고, 우리대학의 도립화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수가 64,000명에 달했다. 우리가 오히려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잘 나가던 도립화 추진운동은 1996년 7월 초 최각규 강원도지사가, 우리가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하게도(?) ‘도립화 불가’ 입장을 밝힘으로써 힘을 잃었다.

 

1997년 8월, 상지대 구성원들은 김찬국 총장의 재추대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구 재단의 음해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조선일보・동아일보・한국일보와 강원일보・강원도민일보 등 일간지에 학교와 김 총장을 비방하는 광고를 싣기도 했으며, 곳곳에 학교를 음해하는 진정서나 탄원서 등을 계속 제출하였다. 이들과의 싸움은 구성원들을 지치게 했으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했다. 나는 1999년 1월 교수협의회 총회에서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나와 함께 유광호 전 부총장 및 우영균 전 대표가 다시 선출되었다. 그러나 우 교수는 개인적인 입장이 대표를 맡기에 적절하지 않다며 한사코 사양해, 당분간 유 교수와 내가 공동대표로 일하기로 하였다.

 

3월 31일 교수협의회 창립 10주년과 상지대 민주화 6주년을 기념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준비기간은 짧았지만, 우리대학 민주화투쟁 당시 우리를 지원했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모두들 상지대의 놀라운 발전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저녁에는 정태춘・박은옥 부부를 치악예술관에 초청하여 시민위안 공연도 가졌다.

 

4월이 되자 학내에 자그마한 사건이 일어났다. 총학생회 임원들이 대학행정부의 독선과 무능을 비판하면서 퇴진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노조도 총학에 동조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총학생회 임원들은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투쟁까지 벌였다. 대학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사건이었기에 이 일은 학내에 약간의 충격파를 몰고 왔다. 학생들의 주장이 옳다는 입장의 교수들도 있었고, 아니라는 교수들도 있었다. 나는 참으로 난감했다.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상황에서 쩔쩔매고 있던 중, 김찬국 총장이 찾아와서 학생들의 단식농성만은 풀어달라고 간곡히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일단 단식을 풀고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자고 총학 임원들을 설득했다. 총학은 자신들의 학내투쟁이 자칫 김문기 구 재단에게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선선히 요구를 들어주었다. 총학의 농성철회와 이에 대응하는 교무위원들의 사과성명 발표로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지만, 그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5월에는 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 총회가 열려 외국어대 김태정 교수가 회장에 피선되었고, 나는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교육부는 이달, 교육발전 5개년 계획 시안과 두뇌한국21(BK21)사업안을 발표하였다. 모두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이었고, 특정대학을 합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교육계는 즉각 반발했다. 6월부터는 국교협을 중심으로 BK21 반대투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4.19 이후 최초로 교수들의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렸다. 전국교수 1천여명이 참가한 이 집회에서 나는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하고 대열의 앞에서 광화문까지 가두행진을 했다.

 

6월 11일, 대법원은 소위 ‘재단반환소송’에서 김문기 씨의 청구를 전부 각하시키거나 기각시켰다. 모두들 환호했다. 이제 법적으로 김문기 씨와 상지대의 관계가 청산된 것이었다. 느긋한 분위기에 취해 있던 7월 14일, 교육부의 이성희 사무관이 대학을 방문했다. 관선이사진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보고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이 무렵 우리대학 관선이사진을 개편할 것이란 소문이 대학가에 나돌고 있던 중이었다. 개편은 구 재단 측의 로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대학구성원들은 현재의 이사진에 대해 늘 고맙게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사진 교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만일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이사진을 개편한다면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1999년 7월 29일, 뜻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김덕중 교육부장관이 김찬국 총장과 이상희 이사장을 장관실로 초치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사전예고 없이 김문기 전이사장도 합석했다. 여기에서 김장관은 “사립대학은 주인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고, 그 주인은 설립자이다. 상지대도 설립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이른바 「사립대 주인론」이다. 장관의 몰상식한 발언 내용은 다음날 아침 한겨레신문에 1면 톱기사로 보도되었으며, 전국의 교육계가 들끓기 시작했다. 교협은 즉각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참여연대와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즉각 장관발언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겨레신문과 대한매일신문 등에는 사설까지 실렸다. 8월 2일, 폭우 속에서 상지대 교협・노동조합・총학이 공동주최하는 항의집회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가졌다. 우리는 망언을 한 교육부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일이 며칠 후 일어나게 된다.

 

8월 6일, 비상근무를 하고 있던 교협 사무실에 진짜 비상소식이 들어왔다. 국회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임시이사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하는 사립학교법 개악안이 통과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실을 확인해 본 결과 틀림없는 내용이었다. 사학재단의 로비에 의한 것이라 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대하 이사진은 무조건 교체된다. 우리는 다음날부터 전국의 교육단체들에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8일은 일요일이었지만 세실레스토랑에 민교협・사교련・국교협 대표자들이 모여 교육관계법 개악시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 서원대・상지대・대구대・한국외대・영남대 등 임시이사가 파견된 대학 교협이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8월 9일에는 교육관련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관계법 개악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교육법 개악저지와 교육5적 퇴진을 위한 교육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를 결성하여 강력 투쟁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당연히 우리대학의 교수・학생들이 주력부대였다. 교수들은 국회로 가서 교육위원들을 방문했다. 나는 박거용 민교협 공동의장・김태정 사교련 회장・전교조의 김은형 수석부위원장・전풍자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회장・윤지희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정대화 상지학원 법인사무국장과 함께 임채정 국민회의 정책위의장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임 의장은 국회 교육위 통과저지 방침을 굳게 확인해 주었다.

 

드디어 교육위가 열리는 8월 10일, 어제 임채정 의장으로부터 통과저지를 약속 받긴 했지만 그래도 몇 사람이 국회 교육위를 방청하기로 했다. 나는 박병섭・정대화 교수와 함께 승용차 편으로 서울로 향했다. 여주를 조금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던 중, 국민회의 박상천 원내총무의 보좌관이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이날 아침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교육관계법 개정을 보류하기로 결정했고, 이미 대변인실을 통해 발표했으니 올라오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박 원내총무께서 애를 많이 써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변인실에 확인한 결과 사실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낮 12시 라디오 뉴스로도 보도되었다. 우리는 다소 맥이 빠졌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회의를 방청하기로 했다.

 

오후 2시, 국회 교육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이재오 법안심사소위원장이 개정방향과 내용을 설명했다. 그러나 설훈・신낙균・이영일 의원 등이 일어나 일부 개악논란이 있고 충분히 합의되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단 보류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시 반론도 있었지만, 교육위의 전통에 따라 전원합의가 되지 않은 사안을 통과시키지 말자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어 함종한 교육위원장이 정회를 선포했다. TV 카메라와 일간지 기자들도 개정이 보류된 것으로 판단하고 모두 철수했다. 기자들은 회의장을 나가면서 나에게 축하한다고 인사도 건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약 한 시간정도의 정회시간 동안 함종한 위원장실에서 3당 간사들이 모여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이어 계속된 회의에서 설훈 의원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악안이 날치기 통과되고 말았다. 현재 파견되어 있는 임시이사의 임기는 12월 31일까지로 한다는 경과조치와 함께. 낮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 우리는 국회의원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사립대학 재단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한 김허남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각계의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우리는 개악안의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해 한나라당사 앞에서 이틀간의 천막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오후에는 국민회의 한화갑 사무총장과 박상천 원내총무, 그리고 한나라당의 이부영 원내총무를 만나 본회의 통과보류를 설득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다음 정기국회에서 개정안을 내도록 노력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만을 들었다.

 

12일 아침, 단식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모든 언론들이 회견에 참여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육관계법은 이날 오후의 본회의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말았다. 교육운동계에서는 이번의 개악을 주도한 국회의원 6명(함종한・이재오・박승국・김일주・김허남・박범진)과 이를 방조한 교육부장관을 교육7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퇴진을 위해 투쟁하기로 했다. 아울러 2000년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에서 이들을 모두 낙선시키기로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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