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목적 창립취지문 및 규약 연혁 조직구성 임원소개 약도 회원가입안내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2014.07.28.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곡, 이희섭의 <단원나비>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곡, 이희섭의 <단원나비>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아모도 어린 나비들에게 수심을 일…

영화를 읽다

이 한 권의 책

사진 에세이

민교협의 정치시평

나의 교육민주화 투쟁기

통합검색
나의 교육민주화 투쟁기
이 글을 twitter로 보내기 이 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이 글을 Me2Day로 보내기 이 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이 글을 C공감으로 보내기
조회 2221
글자 크게 하기 글자 작게 하기 프린트
제목 52장. 김찬국 총장 해임사태
저자 박정원(상지대학교)


                                                 52장. 김찬국 총장 해임사태

 

                                                                                                      박정원(상지대학교)

 

1994년 4월, 김찬국 총장은 감사결과 입시부정에 연루된 교수 5명의 직권해임을 이사회에 요청하였으며, 6월에 열린 이사회에서 이중 4명에 대해 직권해임이 결정되었다. 비리청산 등 산적한 문제들이 하나 둘 해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외부의 압력에 시달리던 김상준 이사장이 사퇴하면서 문제는 꼬이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나름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왔던 분이었는데, 6월 15일의 이사회를 마치고 나서 이사직을 사퇴해버린 것이다. 교육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 강원대 총장인 이춘근 씨를 새 이사장에 선임했다. 교협은 즉각 이를 거부하고 임시이사진의 전면개편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춘근 씨는 자신이 김문기 씨와는 아무 관련도 없으며 모든 것을 교수협의회와 협의해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순진한 우리들은 이번에도 속고 말았다.

 

7월 22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춘근 씨는 정식으로 이사장에 선임됐다. 그리고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김문기 전 이사장이 가석방되었다. 문민정부의 사학개혁은 이것이 한계였다. 갖가지 비리로 천하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 전이사장이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출소했으니, 이제 회오리는 예정된 것이었다.

 

10월경부터 체육학과의 일부학생들이 검찰과 대통령비서실, 그리고 교육부 등에 현재의 학교운영을 비난하는 내용의 투서를 일삼기 시작하더니, 11월 1일에는 교육부에서 민원을 핑계로 이에 대한 해명자료를 요청해 왔다. 대학 측은 관련 자료를 즉시 교육부에 제출하였고, 교육부는 ‘특이사항 없음’ 의견을 첨부하여 대학에 이를 이송했다. 이로써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1995년 1월경 갑자기 ‘상지대의 정상화를 위한 모임’이란 단체가 등장하여 ‘상정회보’라는 신문형태의 유인물을 도처에 배포하고, 법원・검찰・경찰・청와대・교육부・언론・국회 등에 무차별 탄원과 진정을 시작했다. 4월 10일, 이를 빌미로 드디어 교육부의 감사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약 6일간 진행된 감사에서 별다른 문제가 적발되지는 않았다. 제1차 감사에서 꼬투리를 잡지 못한 교육부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4월 24일-26일 사이에 재차 감사를 실시한다. 어떻게 한 번 감사한 내용을 며칠 뒤 다시 한단 말인가? 이것이 법치국가의 수준이었다.

 

5월 10일, 교육부는 감사결과 처분지시를 내렸다. 총장을 경징계하고 사무처장을 중징계하라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첫째, 1994년 교수채용과정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지적이다. 김찬국 총장 부임 후 상지대의 교수채용과정은 세상 어떤 대학보다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다. 둘째, 종합강의동 부지 정지와 기초공사가 부적정하여 학교에 손실을 끼쳤다는 지적이다. 이 또한 근거 없는 주장으로서, 시공사 감리원의 의견서에서도 이는 발주처(상지대)의 잘못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며, 공사와 관련해 대학에 손실을 끼친 바 없다는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셋째, 대학 앞에 위치한 임야를 감정가격보다 높게 매입하여 역시 대학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나, 상식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토지를 시가가 아닌 감정가격에 살 수 있는가? 따라서 세 가지 모두 사실을 왜곡한 것이었다.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든 것은 나의 특별채용에 대한 부분이었다. 교육부의 지적은 우선 내가 “논문실적이 부족하여 재임용탈락 당했다”는 구 재단측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었다. 교육부 감사관 자신들이 92년 10월 27일-11월 2일까지 실시한 감사결과 처분서 「감사01540-1163」(92년 11월 21일자)에서 스스로 분명히 했던 “재임용 평가항목인 연구실적은 20점 만점으로 평가하고도 (...) 부동의 처리한 것은 적절한 사유가 아님”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었다. 어떻게 자신들이 작성한 감사결과 처분서를 뒤엎고, 이제 와서 구 재단의 일방적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가? 아무 근거도 없이! 위로금도 반환조치 하라고 지시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돈과 권력놀이를 하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따로 없었다.

 

5월 18일, 총장은 보직을 전면 개편했다. 이번의 보직개편에는 교협집행부와 중앙보직자들 사이의 갈등과 불신도 한 몫을 했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같이 싸워왔던 동지들인데, 징계지시가 내려온 상태에서 보직을 그만두어야 했다. 같은 날, 김문기 전 이사장이 교육부의 감사 자료를 ‘재단반환 청구소송’의 새로운 증거자료로 법원에 제출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교육부의 감사결과 처분지시 사항 일부가 그대로 복사・인용되어 예의 그 상정회보에 실렸다는 점이었다. 구성원들도 아직 알지 못하는 내용들이 구 재단 관계자들에게 벌써 들어가 있었다. 교육부의 문서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구 재단측에 넘겨진 것이다. 이 유인물은 그대로 학내와 시내에 뿌려졌다.

 

체육학과 일부 학생들이 5월 22일부터 이틀간 총장실을 점거 농성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장은 더 이상 이사회의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5월 25일 이사직 사퇴서를 제출하였다. 5월 30일부터 6월 2일에는 체육학과 일부 학생들이 또 다시 총장실을 점거 농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6월 9일, 학교는 교육부 감사결과 처분지시에 대해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강력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협도 관선이사를 재편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관선이사들이 지난 1년간 자행한 파행운영 실태를 공개하고 나섰다. 드디어 교육부의 감사 자료를 불법유출한 의혹을 받던 김영중 이사가 이사직에서 해임되었다.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었다. 그것으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김영중 이사의 해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점점 더 본질적 부분으로 접근해가고 있었다. 6월 28일, 이춘근 이사장은 기존의 징계위원들을 특별한 사유 없이 모두 해촉하고 일방적으로 이사 3인과 교수 4인으로 징계위원회를 재구성했다. 7월 19일, 이춘근 이사장은 총장이 교육부 장관을 면담한 사실을 징계사유로 추가하고, 학생 선동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유를 역시 징계사유로 추가했다. 총장이 장관을 만난 것이 어떻게 징계사유가 되나? 일주일 후인 7월 26일에는 제1차 징계위원회가 열려 김모 교수를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31일에는 이사장이 전격적으로 임모・김모・장모 교수 등 교수 3인과 직원 한 명을 직위해제 조치했다. 당연히 교수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춘근 이사장은 8월 28일 직위해제 조치를 철회하여 한 발 물러서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틀 후인 8월 30일 열린 징계위원회는 김찬국 총장과 임희진 전 사무처장에 대해 역임의결을 하였다. 참으로 어이없는 사태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우리 땅에서 우리가 자객에게 당한 것이다.

 

총장해임 사태에 접한 교협은 즉각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철야농성 투쟁에 들어갔다. 331일간에 걸친 철야농성을 해제한지 2년 남짓 만에 다시 철농에 돌입한 것이다. 또다시 교수・학생들이 길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의 교육부는 대학을 공부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모두들 유인물을 들고 교육부로, 국회로, 이사장의 집으로 항의방문 투쟁을 전개했다. 일부 교수와 학생들은 이사장이 사는 아파트 공터에 텐트를 설치하고 이사장 면담을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이에 질린 이춘근 이사장은 집에 들어올 시도조차하지 못하고 피해 다녔다. 우리대학 교수・학생들의 교육민주화 의지를 과소평가한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절절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김찬국 총장을 해임한 사건은 전국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미 교수협의회・노조・총학생회・총동문회・조교협의회・병설전문대 평교수협의회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가 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참교육시민모임・전국대학노련・강원대와 한림대교수협의회・춘천경실련・원주기독교교회협의회・정치개혁 시민연합・21세기정책연구소・성공회대 교수일동・연세대 원주캠퍼스 교수들 등등 빗발치듯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성명서의 내용은 대부분 김찬국 총장의 징계를 철회하고, 관선이사진을 해체하며, 이 일에 참여한 징계위원들을 축출하라는 내용이었다.

 

9월 14일, 전국 18개 시민사회단체의 대표급 인사들로 ‘상지대 사태대책 연대회의’가 결성되어 15일 기자회견과 교육부 항의방문을 시작했다. 연대회의의 공동대표에는 서영훈・고영구・김관석・김중배・이효재・장임원 선생이 선임되었다. 많은 인사들이 이 모임에 결합했다. 이 때 참여한 인사들은 강경선(방통대, 인권운동사랑방 공동대표), 강문규(YMCA 사무총장), 강원룡(크리스찬 아카데미 원장), 고영구(민변회장), 곽노현(방통대, 민교협 대외협력위원장), 김경남(KNCC 사회국장), 김기식(참여연대 기획부장), 김병수(연세대 부총장), 김병수(전국민주동문회연합회 조직국장), 김상곤(한신대, 민교협 공동의장), 김상근(KNCC 인권위원장), 김영규(인하대, 민교협 경인지회장), 김중배(참여연대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 사장), 김진균(서울대, 참교육시민모임대표), 김학민(학민사대표), 김호식(목사, 연대 신학대 동문회장), 문현병(부산여대, 민교협 부산․경남지회장), 박거용(상명여대, 민교협 교육위원장), 박병덕(전북대, 민교협 전북지회장), 박영근(중앙대, 민교협 서울지회장), 박정원(상지대, 민교협 강원지회장), 박홍규(영남대,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서영훈(전 KBS사장), 선종원(치악사람들 대표), 성유보(정치개혁연합 집행위원장), 송무호(연대 민주동문회장), 신대균(경실련 부패추방운동본부장), 오충일(목사), 유초하(충북대, 민교협 충북지회장), 윤봉용(홍익대, 전국사립대교수협의회회장), 이돈명(변호사, 전 조선대총장), 이부영(국회의원), 이삼열(숭실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이상희(서울대 명예교수, 참교육시민모임 공동대표), 이세영(한신대, 민교협 사무처장), 이수호(전교조 부위원장), 이우정(국회의원), 이정진(참교육시민모임 사무처장), 이종수(광주대, 민교협 광주・전남지회장), 이종오(계명대, 민교협 공동의장), 이해동(KNCC 인권위 부위원장), 이효재(이대, 정신대문제대책위원장), 장임원(중앙대, 전 민교협 공동대표), 조재훈(공주대, 민교협 대전・충남지회장), 조흥식(서울대, 민교협 정책위원장), 최민화(연대 민주동문회장), 최열(환경운동연합 의장), 홍성우(변호사) 등이었다.

 

9월 20일, 학내에서 전체교수회의가 열렸다. 임모, 류모 등 일부 교수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참석교수들은 김찬국 총장 해임철회와 상지대학의 도립화 추진을 결의했다. 그리고 전체교수회의 명의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교수협의회와 교무위원회도 다음날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강력한 투쟁에 돌입했다. 김찬국 총장 역시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투쟁의지를 내외에 천명했다.

 

그렇지만 이춘근 이사장은 한술 더 떠 장광수 교수를 부총장에 임명하고 총장업무를 대행하게 했다. 장광수・김찬호 교수 등은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 등을 소지한 체육학과 일부 학생들을 대동하고 오히려 본관에 진입하기까지 하였다. 수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의 육탄방어로 물러가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대형거울이 깨지고 파편에 일부 학생들이 다치는 등 사태가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투쟁에서 나는 국회팀장을 맡았다. 일을 분담 맡은 교수들과 함께 새벽 5시에 국회에 올라갔다. 그리고 홍기훈・박석무 의원 등 민주당 교육위원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 분들은 우리를 성의껏 도와주었다. 교협과 교무위원들의 전방위 활동으로 사태는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박영식 교육부장관은 9월 27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늦어도 10월말까지는 관선이사진을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11월 6일, 교육부 징계재심위원회는 김찬국 총장에게 정직 1개월의 처분을 결정했다. 원래 교육부의 지시가 경징계(경고, 감봉 등)였으므로 재심위가 끝내 정직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내린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로서 김찬국 총장해임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목록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번호 제목 저자 날짜 조회
  53장. 국공립대학화 운동 및 교육관계법 개악저지 투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4.05.19. 2485
  52장. 김찬국 총장 해임사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4.04.19. 2222
52   51장 드디어 복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2.21. 1996
51   50장 농성해제 (1993년 7월 22일, 농성 331일째)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2.14. 1471
50   49장. 초대 민주총장에 김찬국 선생 선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1.09. 2254
49   48장. 민주총장 추대 논의 개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1.04. 1338
48   47장. 관선이사 백지화투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27. 1769
47   46장. 기습적으로 파견된 관선이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12. 1664
46   45장. 시민대학건설을 위하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05. 1899
45   44장. 보직교수 연구실 폐쇄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9.28. 1805
44   43장. 정치수사로 끝나고 만 범죄수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9.21. 1495
43   42장.학교공금을 부동산 매입에 사용?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24. 1625
42   41장. 이사장 검거되다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17. 1634
41   40장. 대반전 드라마의 시작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10. 1572
40   39장. 햇볕정책을 몰랐던 구재단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03. 1519



1 /2 / 3 / 4 /

 
(151-832)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1632-2, 2층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로 594-1, 2층) / TEL : 02)885-3680
FAX : 02)6918-6882 / E-Mail : mingyo@chol.com / 후원계좌: KEB하나은행 630-005221-265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