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목적 창립취지문 및 규약 연혁 조직구성 임원소개 약도 회원가입안내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2014.07.28.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곡, 이희섭의 <단원나비>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곡, 이희섭의 <단원나비>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아모도 어린 나비들에게 수심을 일…

영화를 읽다

이 한 권의 책

사진 에세이

민교협의 정치시평

나의 교육민주화 투쟁기

통합검색
나의 교육민주화 투쟁기
이 글을 twitter로 보내기 이 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이 글을 Me2Day로 보내기 이 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이 글을 C공감으로 보내기
조회 1995
글자 크게 하기 글자 작게 하기 프린트
제목 51장 드디어 복직
저자 박정원(상지대학교)


                                                     51장 드디어 복직

 

                                                                                                           박정원(상지대학교)

 

1993년 8월 2일, 관선이사회(임시이사라는 용어보다는, 관선이사가 더 좋은 표현이다)는 김찬국 선생을 총장으로 인준했다. 그리고 약 한 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8월 30일 총장취임식이 열렸다. 상지대 민주화를 위해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인사들과 총장의 지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김진균, 장임원, 김선종, 오세철, 박거용 교수 등 많은 민교협 교수들도 참석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미망인 공덕귀 여사께서도 참석했다. 총학생회에서는 대운동장에 무대를 마련하고 시민들을 초청해 대규모 축하연도 가졌다. 듣던 대로 김 총장은 과연 상상을 불허하는 분이었다. 학생들의 손을 잡고 함께 인사하고, 노래도 부르고...... 이런 멋진 분위기를 상상해 본적도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활력이 교정에 넘치고 있었다. 아직 복직이 안 된 나는 같은 날 일단 시간강사로 임명받았다.

 

민주총장이 취임하는 이 축제일에 다들 떠들썩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정작 투쟁의 중심에 섰던 사람들은 오히려 아웃사이더가 된 느낌이었다. 김대식 교수와 나는 행사장에서 빠져나와 바람을 쐬기로 했다. 우리는 서울에서 내려온 박거용・박동혁 교수와 함께 치악산을 돌아 비포장도로로 태기산을 넘고 이어 평창강변을 따라 난 시골길을 드라이브했다. 조용히 산과 강을 쳐다보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원주로 돌아오는 길에 황둔에서 올챙이묵 한 접시를 앞에 놓고 텁텁한 동동주를 한 사발씩하고 나니 지난 1년간의 모든 일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옥중의 김 전 이사장은 이해 8월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이사승인취소처분취소청구소송’(속칭 재단반환소송)을 냈다. 이사진 승인을 취소한 교육부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갖가지 비리가 다 드러났는데도, 더군다나 이사회를 열지도 않고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했다는 점까지 밝혀졌는데도 교육부의 취소처분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시나? 스스로를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소송은 고등법원에서 피고 즉 교육부가 승소했으나 원고 측이 다시 상고해 1999년 6월 11월에 가서야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었다. 당연히 교육부의 관선이사 파견조치가 합법적인 것이라는 판결이었다.

 

9월 1일부터 시간강사의 자격으로 나는 다시 강단에 섰다. 내가 강의실에 들어서자 경제학과 학생들은 환호성을 올려 환영해 주었다. 거의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나보다 여러분들이 더 고생이 많았다. 이제 힘을 합쳐 우리 대학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주적인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가자. 모든 학생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대학, 모든 학부형들이 자기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대학으로 만들어 나가자. 변치 않고 함께 해 준 여러분들, 정말 고맙다. 그 동안 못했던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달라. 나도 더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새 학기와 함께 학교집행부도 새로 들어섰다. 이제 남은 일은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구조를 청산하고, 대학의 새로운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워나가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날 절대 강자와 싸워나갈 때는 ‘대학민주화’라는 이념아래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동지들이, 사소한 의견의 차이로 그룹별로 나누어지면서 서로 간에 약간씩 금이 가고 있었다.

 

민주대학 건설의 대의보다는 효율성에 입각한 성과주의가 점차 대학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비리관련자에 대한 청산도 지지부진했다. 제대로 청산도 못하고 포용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됐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관선이사진의 권한 강화로 이어졌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학내 개혁세력을 적대시하였다. 정관개정 문제나 나의 복직문제, 교원인사 문제, 교협 위상강화 문제 등에서 모두 반대를 하고 나섰다. 심지어 한방병원장 임명을 둘러싸고 총장에게 각서를 요구하는 등 그 행패가 도를 넘고 있었다. 그들은 구 재단 측 비리관련자의 징계에는 너그러우면서, 나의 복직문제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나의 복직은 교협과 우리의 투쟁을 도운 외부인사들만의 주장일 뿐, 이사들에게는 사실상 커다란 관심사가 아닌 듯이 보였다. 일부 이사들은 나에 대해 구 재단이 하던 것과 같은 주장을 하기까지 했다. 싸움에서 이겨놓고 복직은 안 되는 지루한 기다림의 기간이 한 학기 내내 지속되었다. 강의도 하고 연구실도 회복하는 등 실질적인 교수였지만, 형식은 어디까지나 시간강사일 뿐이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한심한 세월이 계속되었다. 학생들의 여론도 나빠져 갔다. 그렇지만 나를 빨리 복직시키라는 각계의 압력은 결국 이사들의 자세를 바꾸게 했다. 어차피 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1994년 1월 중순경, 내가 복직해야 한다는 결론에 모든 이사들이 동의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복직의 조건을 둘러싸고 또다시 교협과 이사회는 대립했다. 교협의 주장은 조건 없는 원상회복이었으나 이사회의 주장은 신규채용이었다. 교협은 원상회복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교원인사위원회에 이를 상정했고, 2월 4일 열린 인사위원회는 나의 소급임용을 결의했다. 그러나 2월 16일의 이사회는 소급임용을 인정할 수 없다며 특별채용을 결의했다. 아울러 봉급을 받지 못한 1년 반의 기간에 대한 보상문제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사회는 전권을 총장에게 위임했다고 했으나, 사실상 교묘하게 총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대학과 총장의 권위에 대해 무지한 그들은 이사회 석상에서 총장에게 “김 총장도 연세대학에서 해직되었다가 복직한 걸로 알고 있는데, 보상을 얼마나 받았어요?”하고 묻는 등 몰상식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총장은 “고려대는 밀린 봉급을 다 주었고, 연세대는 절반만 주었어요.”하고 답하셨단다. 이 발언을 들은 이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럼 우리도 연세대식으로 합시다.”하고 결론지었다.

 

그 후 김찬국 총장이 나를 불렀다. 해직된 지 이미 기간이 많이 경과해 원상복직은 사실상 어려우니 조교수로 신규채용하는 조건을 받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에 완강히 저항했다. 이 문제가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재임용탈락 당했다 복직될 전국의 모든 교수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되는 만큼 원상복직이외의 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 설명 드렸다. 교협 내에서 김대식・오승석 교수 등 일부 교수들도 나에게 절대 이사회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말고 버티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총장은 교협의 대표들도 불러 같은 입장을 전하고 나를 설득해 달라고 했다. 교협 대표들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었다. 복직 조건을 문제 삼아 다시 싸운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2월 18일 총장은 다시 나를 불렀다. “박 교수, 나도 박 교수의 억울한 심정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조건이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나도 연세대학에서 그랬어요. 일년 반의 경력이 빠지는 것은 교육민주화에 기여한 훈장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재임용탈락 당했다가 복직되는 경우는 박 교수가 전국에서 처음이에요. 이만큼 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총장은 나에게 항상 각별한 관심을 보여 온 분이다. 지난 추석에는 사모님과 아들을 집으로 보내 쇠고기 다섯 근과 상당한 액수의 용돈까지 보내 주었다. 이 분인들 내가 잘못되길 원하겠는가? 무엇보다 빨리 복직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현실적 상황에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복직조건을 받아들임에 따라 2월 21일에 다시 교원인사위원회가 열렸으며, 2월 26일 이사회는 나를 상지대 경제학과 조교수로 신규임용한다고 결의했다. 보상금은 해직된 기간 18개월 동안 매달 1백만원씩을 보상하는 것으로 하여 1천8백만원이 지급되었다. 1년 반의 해직기간은 상지대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 기부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지만, 경력감소에 따른 연금감소 등 현실적으로 손실은 컸다. 동료교수들은 봉급이 많이 상승했지만, 나에게는 체력단련비조차 신규임용 교원에 적용되는 비율로 지급되었다. 하다못해 연구실 전화번호도 학과의 후배교수들 뒷줄에 섰다.

 

보상금은 총장의 판공비에서 지급되었고, 이 정도의 보상도 총장이 많이 노력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나는 불만이었다. 나 혼자만의 계산인지는 모르겠으나, 1년 반의 봉급에다 위로금, 연금 손실분, 정신적 피해 등이 계산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교협의 투쟁기금만 해도 4천만원에 달하는데. 투쟁기금을 돌려줄 만큼의 보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교수들에게도 지난 99년 1월 소속대학에서 보상금이 지급되었는데, 학교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다 희생당한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보상도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8백만원은 그간 발생한 부채를 갚는데 쓰고, 나머지 1천만원은 교수협의회에 기부했다. 그런데 95년의 교육부 표적감사가 있고 나서 이 1천8백만원의 위로금도 고스란히 학교에 반납하게 되었다.

 

1994년 3월 2일 나는 정식으로 복직했다. 1989년 쫓겨났던 전교조 해직교사들도 이날 복직했다. 복직투쟁 기간 동안 가끔씩 만나 친해진 지역의 해직교사들과 서로 축하의 인사도 건넸다. 나의 복직과 함께 총 29명의 교수가 새로 충원되었다. 재단이 마음대로 뽑은 교수가 아니라 학과와 행정본부가 중심이 되어 합리적인 채용절차를 거친 새로운 교수가 대거 들어왔다. 새로운 피가 수혈된 것이다.





목록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번호 제목 저자 날짜 조회
  53장. 국공립대학화 운동 및 교육관계법 개악저지 투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4.05.19. 2484
  52장. 김찬국 총장 해임사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4.04.19. 2221
  51장 드디어 복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2.21. 1996
51   50장 농성해제 (1993년 7월 22일, 농성 331일째)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2.14. 1471
50   49장. 초대 민주총장에 김찬국 선생 선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1.09. 2254
49   48장. 민주총장 추대 논의 개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1.04. 1338
48   47장. 관선이사 백지화투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27. 1769
47   46장. 기습적으로 파견된 관선이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12. 1664
46   45장. 시민대학건설을 위하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05. 1899
45   44장. 보직교수 연구실 폐쇄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9.28. 1805
44   43장. 정치수사로 끝나고 만 범죄수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9.21. 1495
43   42장.학교공금을 부동산 매입에 사용?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24. 1624
42   41장. 이사장 검거되다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17. 1634
41   40장. 대반전 드라마의 시작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10. 1572
40   39장. 햇볕정책을 몰랐던 구재단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03. 1518



1 /2 / 3 / 4 /

 
(151-832)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1632-2, 2층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로 594-1, 2층) / TEL : 02)885-3680
FAX : 02)6918-6882 / E-Mail : mingyo@chol.com / 후원계좌: KEB하나은행 630-005221-265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