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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9장. 초대 민주총장에 김찬국 선생 선출
저자 박정원(상지대학교)


49장. 초대 민주총장에 김찬국 선생 선출

 

                                                                                                    박정원(상지대학교)

 

 

직원노조 결성되다 (6월 21일-7월 7일, 농성 299일-315일째)

 

인권운동가 김찬국 선생을 총장으로 추대하는 데는 다들 동의하는 상황이었으나 선출방식이 문제로 남아있었다. 우리는 전체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기로 했다. 전체교수들의 의견을 물어 본 결과, 다수의 교수들이 이번 총장은 외부에서 영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도 전체교수회의에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전체교수회의에서 선출하자는 안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았다. 교협이 소수인데 전체교수회의를 열어 찬반투표를 하게 되면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엉뚱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사회에서는 과거보다는 좀 누그러져, 총장후보 2인을 이사회에 제청하면 그 가운데서 한 분을 총장으로 확정하겠다고 했다. 22일 오후에 우리는 교협 전체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이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김찬국선생 한 분도 설득하기 힘든데, 원로 두 분을 설득했다가 그 중 한 분을 바보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김찬국 선생 한 분만을 단수후보로 이사회에 추천하기로 했다. 물론 이사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강경 투쟁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회의 도중, 교육부에 항의방문 간 팀에서 연락이 왔다. 만일 이사진을 백지화하지 않으면 이틀 후 교수협의회 전체회원들이 교육부로 올라와 농성하겠다고 하니까 이사 두 분을 우리의 요구대로 추가해 주겠다고 했단다. 이사 후보 가운데 한 분은 최기식 신부였다. 최신부는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까지 하신 분이다. 생각이 깊고 해박하여 아직 젊었을 때부터 지역의 원로로 추앙받아 온 인물이다. 그런데 우리가 요구한 다른 분 즉, 박 모 변호사는 서울거주자이기 때문에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이를 두고 실랑이가 두 달이 넘게 지속되다가 9월에 가서야 최기식 신부와 이모 변호사가 이사로 추가 선임되었다. 최 신부는 우리가 교육부에 요청한 분이었지만, 이 변호사는 또 누구인가? 알아보니 이 분은 지역출신으로 현재 서울에서 개업하고 있는 분이었다. 누구는 서울거주자라서 안 된다더니 이분은 같은 서울사람인데도 임명이 되었다. 최기식 신부는 법인이사로서 대학의 안정적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사퇴한 ㅇ이사 자리에는 김찬국총장이 이사로 선임되었다. 이날 경실련에서 김O준 이사장과 교육부장관에게 공식문서를 보냈다. 나의 복직을 요청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학교로서는 정관개정과 비리관련 교직원의 징계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는 형편이라 이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이사들과 만나 대화를 하기로 했다. 이사들은 징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하면서 7월 24일이 교육부 보고 마감시한이라 했다.

 

6월 25일, 아주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직위해제 되었던 세 교수들의 봉급이 정상적으로 지급된 것이다. 그 동안 받지 못했던 20%는 나중에 지급된다고 교무처장이 전했다. 어쨌든 다행한 일이었다. 그 분들이 봉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나에게는 늘 불편한 사항이었다. 볼 때마다 미안하기도 했고. 이날 5시 반에 교협회의가 소집되었다. 총장추대주비위에서 확정한 김찬국 선생을 공식적으로 추인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김찬국 선생을 총장후보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이날부터 전체교수를 대상으로 총장추대 서명작업에 돌입했다. 구속된 이사장이 토혈을 하고 있으며 곧 풀려 나온다는 소문이 학내에 나돌기 시작했다. 이런 소문만 돌아도 한발 뒤로 빼고 정세를 살펴보는 인물들이 꽤나 많았다.

 

6월 26일, 직원노조가 결성되었다. 왜 이 시점에서 결성했는지 몇 가지 의혹도 들었으나, 노조는 일단 결성되면 스스로의 운동법칙에 따르게 될 것이므로 크게 걱정할 것은 없었다. 이제라도 직원선생들이 참된 교육자의 길을 가주면 될 것이다.

 

김찬국 총장을 추대하는 서명에 7월 1일까지 117명의 교수가 동참했다. 전체 교수 151명 중 교협회원이 40명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다수 교수들의 동의를 확실하게 확보한 셈이다. 이와는 별도로 총학생회도 약 2천3백명이 넘는 학생들의 서명을 받았다. 우리는 다음날 대표(우영균・황도근・장재화・이상혁 교수)를 뽑아 총학 대표 2인과 함께 이사장을 면담하고 공문과 서명용지를 전달하였다. 그러나 김찬국 선생 댁을 돌아 내려오던 박수영 부총학생회장과 여준성 정책실장이 불심검문을 받아 강남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이들은 전산소 기물 파손과 디스켓 방출 때문에 특수절도죄로 본인들도 모르게 수배 중이었다.

 

교수들의 총장 단독후보 추대 요구를 접한 이사회는 인준을 거부했다. 그들은 총장선임문제가 이사회의 고유권한이라며 117명의 교수서명을 무시해 버리고, 대신 전체교수 투표를 통해 선출할 것과 그것도 두 명의 후보를 복수 추천하면 그 중 한 사람을 자신들이 지명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서 나타나 감히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고 하나? 학교발전에 아무것도 보탠 것 없는 사람들이 구성원들을 발아래도 보면서 권한을 행사하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우리는 논의 끝에 일단 전체 교수회의를 여는 것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복수후보 추천은 단호히 거부하기로 했다.

 

초대 민주총장에 김찬국 선생 선출 (7월 8일-21일, 농성 316-330일째)

 

7월 8일 전체교수회의가 열렸다. 투표권이 없는 나는 홀로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 대학 교협이 싸우긴 정말 열심히 잘 싸웠지만, 해직교사도 조합원으로 인정해주는 전교조와 같은 배려는 당시에 없었다.) 초조해 하면서 회의가 열리는 도서관을 바라다보고 있던 차, 새로 결성된 병설전문대 평교수협의회(상평협) 공동의장들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그들은 허경택・김진열・신병식 교수였다. 전문대는 우리보다 조건이 훨씬 열악하여 교협조차 결성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전문대 교수들은 우리가 1년 가까이 농성을 하고 있어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7월 6일 드디어 평교수협의회를 결성했단다. 나는 축하의 인사와 함께 현재의 학교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 우리와 더불어 학교발전의 두 축이 되자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의 투쟁에 힘이 되어주지 못해 늘 미안했다며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약 1시간 반쯤이나 앉아 있다가 돌아갔다. 전문대평교수협의회는 비록 학내에서 소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회원교수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해 대학을 민주화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6시 30분경, 전체교수회의를 마치고 많은 회원교수들이 농성장으로 돌아왔다. 다들 얼굴에 희색이 가득하여 결과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날 회의는 총장직무대행이 주재하였고, 이광춘 교협 대표가 제안 설명을 하였으며 안건채택에 관한 토론에 이어 투표에 들어갔단다. 안건은 김찬국 선생을 단일 총장후보로 추대한 교수 117명의 서명 문건을 전체교수회의 이름으로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이날 회의에는 총 101명의 교수들이 참여하였다. 비밀투표 결과 찬성 85명, 반대 14명, 무효 2명으로 가결되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김찬국 선생의 자필 메시지가 낭독되었다.

 

낭독이 끝나자 참석교수들과 밖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함성을 질렀다. 이 메시지는 교수와 학생, 그리고 이사회 모두의 입장을 잘 고려한 글이었다. 김찬국 선생의 지혜가 엿보이는 글이었으나, 분명한 교육관이 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10일 오후에 열린 이사회는 다시 말을 바꿔 전체교수회의 결과를 거부했다. 그 대신 김O준 이사장이 김찬국 선생을 면담해 보고 19일쯤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7월 14일 오후에 새로 보직에 임명된 한 교수를 만났다. 나는 인사위원회가 나의 복직문제를 우선해서 다루는 줄 알았는데, 내 복직 건은 아직 인사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단다. 학과장 임명 등의 일이 더 시급한 문제로 올라와 있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불뚝 화가 치솟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7월 19일, 기다리던 이사회가 열렸으나 교협에 대해 이제는 새로운 요구를 해 왔다. 교수협의회가 점거중인 본관 401호실의 농성을 먼저 해제하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교협과 이사회 사이에 또다시 지루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20일 비상총회를 열고 농성해제 불가 입장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다시 교육부의 의지와 이사장 및 김찬국 선생의 입장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일을 위해 이광춘 대표가 서울과 원주를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7월 22일 총회를 열어 최종결정을 하기로 했다. 물론 우리가 추대한 김찬국 선생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로 하였다. 힘든 시기 교협을 잘 이끌었던 이광춘 교수는 2010년 2월 말 정년퇴직 했다. 요즘도 가끔씩 한겨레신문 등에 그의 환경관련 인터뷰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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