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목적 창립취지문 및 규약 연혁 조직구성 임원소개 약도 회원가입안내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2014.07.28.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곡, 이희섭의 <단원나비>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곡, 이희섭의 <단원나비>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아모도 어린 나비들에게 수심을 일…

영화를 읽다

이 한 권의 책

사진 에세이

민교협의 정치시평

나의 교육민주화 투쟁기

통합검색
나의 교육민주화 투쟁기
이 글을 twitter로 보내기 이 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이 글을 Me2Day로 보내기 이 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이 글을 C공감으로 보내기
조회 1665
글자 크게 하기 글자 작게 하기 프린트
제목 46장. 기습적으로 파견된 관선이사
저자 박정원(상지대학교)


46장. 기습적으로 파견된 관선이사

 

 5월 10일(월) 농성258일 또다시 교수들만 조사하는 교육부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이 11일 사표를 냈단다. 이유는 “후배들에게 승진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글쎄요? 세상에는 희한한 일도 참 많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선후배 동료 모두와 비정하게 경쟁했을 텐데. 갑자기 사표를 내다니. 5월 9일 동아일보에 보도된 대학 부정입학 사건과 관계가 없을까요? 도표를 곁들인 이 기사에 의하면 지난 88년부터 93년까지 전국 75개 대학에서 신입학부정 900명, 편입학부정 118명, 주관식 채점착오로 인한 부당입학 343명, 답안지교체 등 부정에 의한 입학 51명이나 되었다. 총 1,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말이다. 우리대학에도 9명의 입시부정이 있었단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11일 오전에는 총학생회에서 총장직무대행을 찾아가 사퇴를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유는 총장직대가 학생들의 집으로 공한을 보내 학생들을 매도하고 면학에만 열중하도록 학부모가 지도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강력한 항의에 총장은 졸도(?)했단다. 그리고 이를 핑계로 아예 입원까지 해 버렸다. 울고 싶은데 뺨맞은 꼴이다. 학생들은 12일에도 한총련과 함께 교육부 상경투쟁을 했다. 모두 2백여명이 참여했는데, 교육부앞에서 50여명이 연행되었다. 서울대 학생들도 50여명이 우리학생들과 함께 연행되었다.

 

14일에는 교육부 조사반원 3명이 농성장에 입실했다. 과거에는 우리가 그렇게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 없던 분들이 스스로 농성장을 찾은 것이다. 이들은 약 3시간 동안 대표단과 면담한 후 돌아갔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또다시 우리들을 분노하게 했다. 김OO씨의 대학운영 비리를 조사할 생각은 안 하고, 교수들에게 강의실시 현황을 확인하는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날 우리가 제기한 「교수 직위해제처분 취소청구소송」이 공식적으로 접수되었다.(93-가합 759호)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마침 광주항쟁 기념주간이 시작되어 학생들 40여명이 1박2일 일정으로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고 돌아왔다. 조선대에도 들러 조선대 민주화과정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스승의 날이라 아침부터 경제학과 학생들이 손에 장미 한 송이씩을 들고 농성장을 방문했다. 내가 곧 다시 강단에 설 것이며 경제학과 학생들은 이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복직이 되지 않아 강의를 못한다.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도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하다. 역시 교수는 강단에서 목청이 터져라 강의해야 살맛이 나는 사람들이다. 밤늦게 김창환 총학생회장과 졸업생인 정광헌군, 그리고 박수영 부회장이 농성장에 화환을 가져왔다.

 

 

5월 17일(월)농성 265일째 관선이사 파견촉구 청원

 

17일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던 김대식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학정책실장이 관선이사를 파견하겠다고 했단다. 앞으로 2주쯤의 예고기간을 거쳐 파견하겠단다. 예고기간이란 매우 형식적인 행정절차 같지만, 결과적으로 구 재단에게 뒷정리를 깨끗하게 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 문서를 파기하고, 숨기고, 직원을 계속 특채하고, 친인척은 부당 승진시키고...... 모든 것을 다했다. 우리는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19일 오후에는 관선이사 파견을 촉구하는 교수학생 결의대회를 가졌다. 학생 1천2백여명과 교수 30명 가량이 참가했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농성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방뜰에는 여름의 열기가 가득하다. 농성장이 그렇게 시원한 줄 몰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시민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시내로 진출했으나, 교수들은 집회허가가 나지 않은 행사에 참여하기가 부담스러워 나가지 않았다. 대신 농성장에서 전체회의를 열었다.

 

교협의 전체회의에서는 조속히 관선이사를 파견하도록 국회에 청원을 하고, 교육부에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이를 위해 업무를 분담했다. 그리고 우리가 요구하는 인물이 선임될 수 있도록 교육부에 명단을 올리기로 했다. 아울러 이분들을 접촉해 교육부의 요구가 있게 되면 승락하여 줄 것을 부탁하기로 했다. 또 교육부의 보강계획서 제출 요구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는데, 현재 상태에서 보강계획서 제출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낸 지난번의 진정서(관선이사 파견시 우리의 요구를 반영해 달라는 진정)에 대해 교육부에서 회신이 왔는데, “앞으로 대학 정상화계획을 세울 때 참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답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임이 드러났다.

 

김OO씨가 구속된 이후에도 우리의 투쟁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각계의 성금이 답지하고 있었다. 지난 4월이후 이날까지 접수된 성금은, 한신대 여홍상 교수, 방통대 곽노현 교수, 한신대 교수평의회, 성대 민교협, 익명의 성대 동양철학과 교수, 상지대 특별기금 참여교수 일동, 강원대 교협, 이남철 교수, 익명의 회원교수, 호서대 교협 등이었고 민교협에서 우리를 위해 모금한 성금 2백만원도 전달되었다.

 

20일부터 우리는 지역과 중앙의 각계인사들을 방문했다. 관선이사 파견과 학교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내용 및 교육부관리의 방문이나 전화연락이 있을 때 공정하게 말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회원 교수 3-4인이 한 조가 되어 면담팀을 조직했는데, 이날부터 결과가 접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역의 한 국립전문대 김대호 학장을 면담한 팀의 보고가 시선을 끌었다.

 

그는 며칠 전 교육부 장학관 수명이 대학을 방문했다고 했다. 그들은 김학장에게 우리대학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고는 교육부의 밑그림(관선이사진 후보명단)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김학장은 교협에 대해 교육부가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는 것 같으니, 교협에서 행정사무관과 자주 연락을 취하는 편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이 보고를 접하고 긴장했다. 이미 관선이사진이 어느 정도 구성된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김대호 학장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 이사진 명단은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가? 혹시 우리가 교육부에 제출했던 그 명단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확인해 볼 방법은 없었다.

 

 

5월 24일(월) 농성 272일째 日本 朝日TV에서도 보도

 

24일 아침 일찍 경실련 신대균 목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일본의 ‘TV아사히“가 한국의 부패정치인 사정을 다루는 프로에 우리대학과 김OO씨 문제를 넣기로 했는데, 나의 인터뷰 장면이 필요하다고 했단다. 서둘러 종로5가 경실련 사무실로 갔더니, 서경석․신대균 목사와 아사히TV의 기자와 리포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리포터는 40대로 보이는 재일동포 변선생이었다. 오사카에서 「코리아리포트」를 발행하는 분으로서 본관이 우리대학이 있는 O시라 했고, 그래서 ”고향“에서 온 나를 만나 반가워했다. 나는 이사장의 학원운영 비리와 교수․학생들의 투쟁 내용을 간략하게 인터뷰했다. 그걸로 끝나는 줄 알았더니 학교에 가서 교수들의 농성장과 교정을 찍겠다고 했다. 특히 변선생은 ”고향“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면서 빨리 가자고 종용했다. 나는 그들을 농성장과 치악산으로 안내하고 교정을 배경으로 다시 인터뷰도 했다. 변선생은 멀리 보이는 치악산의 모습을 한동안 응시하는 듯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그곳에 살면서도 항상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저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나에게 독일제 라이터 한개와, 집사람에게 주라면서 간단한 기념품을 주고 갔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 대학민주화투쟁이 있었으며, 그 결실이 오늘날 일본의 대학이라면서 힘내라고 격려도 했다. 이날 취재한 내용은 5월 30일 아침 10시-11시 30분까지 방영되었고, 일본에서 이 프로를 시청한 친구로부터 전화도 받았다.

 

26일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30부에서 김OO 피고인을 비롯해 우리대학 입시부정관련 교직원과 학부모 37명에 대한 첫 공판이 있었다. 우리는 20여명이 이 공판을 지켜봤는데, 김OO씨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특히 “부정입학을 지시하거나 사후에 보고 받은 적이 없으며 선대묘역을 확장한 것은 주변 땅 소유자들이 사방공사를 해달라고 해 어쩔 수 없이 확장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입시부정은 지시한 적도 없고 사후에도 보고 받은 바가 없다? 호화분묘도 인근의 땅주인들이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했다? 말이 되지 않는 답변이었다. 포승줄에 묶인 채 재판정에 들어설 때는 약간 측은한 마음도 들었는데, 답변태도를 보고 나서는 일말의 동정심까지 싹 가셔버렸다.

 

5월 31일(월) 농성 279일째 기습적으로 파견된 관선이사

 

31일 지원에서 공동대표 3인의 교수직위보전 가처분신청에 대한 결정이 내려졌다.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본안판결 확정시까지 직위가 보전된다는 내용이었고, 지급 받지 못한 3-5월분 월급일부는 소급해 지급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형사기소를 이유로 한 직위해제조치는 사립학교법상 유효하기 때문이라며, 만일 무죄가 확정되면 소급지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6월 1일 이광춘 교수가 교육부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11시에 올라갔는데 4시가 되어서야 겨우 담당과장을 만나서 약 30분간 대담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교육부 안과장은 임시이사 파견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는 생각 안 해봤고 파견되더라도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했단다. 며칠만 지나면 들통 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 교수는 교협이 작성한 관선이사 추천자 명단을 장관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장관에게 전하겠다고 해서 주고 왔다고 했다. 이때는 교육부가 이미 관선이사 명단을 확정지은 후였으나 우리를 속이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와 김대식 교수는 장임원 교수와 김진균 교수를 만나 혹시 교육부에서 관선이사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오면 거절하지 말고 수락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내려왔다. 또 이상혁 교수 등은 최기식 신부를 만나 같은 부탁을 했다. 그 동안 수업거부를 해 온 총학생회는 이날 전원유급사태를 막기 위해 6월 7일부터 정상수업을 받기로 결의했다. 이날 교육계 원로교수 41명이 「대학교육의 일대 개혁을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6월 2일 김OO씨는 서울지법에서 있은 두 번째 공판에서 징역 7년을 구형 받았다. 대검 중수부의 김성호 검사는 논고문에서 “김피고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을 축재의 수단으로 이용, 돈을 받고 학생들을 부정입학시키고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등 죄질이 나빠 중형을 구형한다”고 했다. 또 사위인 황재복 피고인에게는 징역 5년, 교직원 7명에게는 5-2년, 학부모 18명에게는 징역 1년 6월을 구형했다. 알선책이었던 교수 3명에게는 벌금 1백만원이 구형되었다.

오후가 되자 출처미상의 관선이사 예정자 명단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 명단은 시의회의장, 전 교육부차관, 전 도교육위원회 관리국장, 지역의 국립전문대학장, 시번영회장, 지역의 사립학교이사장, 시교육장 등이었다. 우리는 이 명단을 보고 흥분했다. 우리가 추천한 인사들이 완전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직 차관을 제외하고는 대학교육과 별 관계도 없는 무명의 지역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천하의 ㅅ대를 무슨 시골 고등학교 정도로 아나? 게다가 이 사람들은 대부분 김OO씨와 교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는 그 실상을 2년여가 지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우리대학 도립화를 위한 범시민추진위 사무총장을 맡고 있으면서 상임대표이던 문창모 의원을 자주 만났는데, 고령의 문의원이 하루는 이렇게 말씀을 했다. “김OO씨가 하도 만나자고 졸라서 서울의 모 호텔에서 만났더니, 관선이사진을 거의 다 자기가 추천했다고 큰소리를 치더라” 그러니까 이 말 대로라면 교육부는 관선이사진을 선임한 것이 아니라, 이사장의 재산관리인을 선임한 것이다. 나쁜 사람들!

 

다음날부터 우리는 교육부를 항의방문하기 시작했다. 3일에는 우영균대표가 교육부에 올라갔지만, 교육부관리들은 “모른다”로 일관할 뿐이었다. 4일에도 여러 교수들이 교육부로 가서 장관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장관은 면담을 거부했다. 오후 5시경 서울방문팀들은 아직 교육부앞에서 농성하고 있는데, 오히려 지방에 있는 도민일보 함영이기자가 관선이사가 발표되었다고 농성장에 연락을 해 왔다. 우리를 따돌리고 기자들에게만 보도자료를 배포했단다.

교육부는 오후 6시 가까이 되어서야 관선이사를 선임하였으니 제발 수용해 달라고 학교에 대고 사정을 했단다. 믿는 사람의 뒤통수를 치고는, 부득이한 일이니 한 번 봐달라고 한 것이다. 관선이사 명단은 이틀 전에 나온 그대로였다. 우리가 요청한 분은 단 한 분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장관이 전 교육부 차관을 불러 관선이사장을 맡아줄 것과 학교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정말 분노가 치솟는 일이었다.

 

5일은 토요일이었지만 교협의 긴급회의(운영위와 자문위)가 열렸다. 우리는 교육부가 보낸 관선이사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민교협․사교련 등과 협의하여 교육부의 부당한 임시이사 철회를 위해 강력히 투쟁하기로 했다.





목록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번호 제목 저자 날짜 조회
  53장. 국공립대학화 운동 및 교육관계법 개악저지 투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4.05.19. 2490
  52장. 김찬국 총장 해임사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4.04.19. 2225
52   51장 드디어 복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2.21. 2001
51   50장 농성해제 (1993년 7월 22일, 농성 331일째)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2.14. 1476
50   49장. 초대 민주총장에 김찬국 선생 선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1.09. 2258
49   48장. 민주총장 추대 논의 개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1.04. 1341
48   47장. 관선이사 백지화투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27. 1772
  46장. 기습적으로 파견된 관선이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12. 1666
46   45장. 시민대학건설을 위하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05. 1901
45   44장. 보직교수 연구실 폐쇄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9.28. 1807
44   43장. 정치수사로 끝나고 만 범죄수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9.21. 1496
43   42장.학교공금을 부동산 매입에 사용?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24. 1627
42   41장. 이사장 검거되다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17. 1636
41   40장. 대반전 드라마의 시작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10. 1576
40   39장. 햇볕정책을 몰랐던 구재단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03. 1522



1 /2 / 3 / 4 /

 
(151-832)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1632-2, 2층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로 594-1, 2층) / TEL : 02)885-3680
FAX : 02)6918-6882 / E-Mail : mingyo@chol.com / 후원계좌: KEB하나은행 630-005221-265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