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목적 창립취지문 및 규약 연혁 조직구성 임원소개 약도 회원가입안내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2014.07.28.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곡, 이희섭의 <단원나비>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곡, 이희섭의 <단원나비>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아모도 어린 나비들에게 수심을 일…

영화를 읽다

이 한 권의 책

사진 에세이

민교협의 정치시평

나의 교육민주화 투쟁기

통합검색
나의 교육민주화 투쟁기
이 글을 twitter로 보내기 이 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이 글을 Me2Day로 보내기 이 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이 글을 C공감으로 보내기
조회 1518
글자 크게 하기 글자 작게 하기 프린트
제목 39장. 햇볕정책을 몰랐던 구재단
저자 박정원(상지대학교)


                                40장. 햇볕정책을 몰랐던 구재단

 

                                                                      박정원(상지대학교)

 

 

다시 불붙는 학생들의 투쟁 (3월 15일, 월)
 목숨을 건 단식투쟁이 무위로 돌아가고, 교협대표들이 직위해제 되면서 교수들의 농성이 차츰 힘을 잃어 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학생들의 투쟁은 점차 가열화 되기 시작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학생들의 각오가 새로워지는 모양이었다. 우리대학 총학의 학원자주화투쟁에는 무슨 정파가 따로 없었다. 모두가 하나 되어 「이사장 퇴진!」을 외쳤다. 이 날도 11시 30분이 되자 해방뜰에서 학생들의 집회가 시작되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도 1천명 가까운 학생들이 운집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치고 학교 부근의 주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당부하고 귀교했다. 가두투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학생들이 지치면 교수가 일어서고, 교수의 힘이 부치면 학생들이 불길을 돋우는 이 모습! 우리 대학이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90년대의 우리모습이었다.


검찰과 경찰의 무차별 최후공세 (3월 16일, 화)
 재단은 최후의 공세를 개시했다. 경찰과 검찰을 총동원했다는 말도 돌았다. 지난번 경찰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김대식 교수가 이날 오전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다. 경찰의 입장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사장 명예훼손건과 관련한 재판기일도 확정되었다는 통보가 법원으로부터 왔다. 이틀 후인 3월 18일에 1호 법정에서 열린다고 했다. 검찰에 경찰에 지방판사까지 모두 합세한 모양이었다. 
 

요즘 TV연속극이나 영화에 판・검사가 종종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모두 꽃미남에다가 집안도 좋고 학벌도 좋고 심지어 인간성마저 괜찮은 양 그려지고 있다. 집안이 좋다는 건 윗대에서 뭔가 챙긴 결과일 거고, 학벌이 좋다는 건 사교육비를 많이 썼다는 얘기일 거다. 제 부모나 애인에게는 잘하니 인간성이 좋은 걸로 보인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을 감추고 있다. 판검사들이 서민들 위에 군림하면서 권력자의 앞잡이 노릇한다는 것을! 그 때 구 재단의 주구노릇을 한 강O보 검사,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같은 역할을 한 강O구 판사! 의인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데, 악인이 오히려 번창함을 개탄한 욥의 탄식이 생각난다.(“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늘리고 세력이 강하냐!”; 욥기 21장)

 

 심 아무개 교무처장은 우리가 농성장으로 쓰고 있는 대학원 강의실에서 퇴실하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업무방해라고 한다. 권력기관을 총동원했다는 재단의 대대적인 공세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몸부림 내지는 허세일 뿐이었다.
이날 밤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운영위가 열려 재판문제 등 현안에 대한 교협 차원의 대응책을 논의했다. 최대현안인 공판은 일단 연기시키고 사태의 진행을 예의주시하기로 했다.


김찬국 선생의 원주 공개강연 (3월 17일, 수)
 교협은 법원에 「공판연기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태에서 재판 때문에 불려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후에 KBS 공개홀에서 연세대 전 부총장 김찬국 교수의 ‘역사발전과 지성인의 사명’이라는 공개강좌가 있었다.
김찬국 교수는 우리사회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애를 많이 쓰신 분이다. 특히 ‘ㅅ대 사태해결을 위한 모금 제청서’에 제청인으로 기꺼이 참여해 주신 분이라, 최현숙・이상은 교수가 교수협의회를 대표하여 찾아가 감사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구 재단퇴진 후 그 분이 우리대학에 총장으로 오시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총학생회는 이미 예고된 대로 오후 1시부터 「대학 점거농성 2백일 기념 및 족벌재단 퇴진투쟁 선포식」을 가졌다. 교수협의회보다 나흘 늦게 시작한 총장실 점거농성이 어느덧 200일째를 맞게 된 것이다. 참으로 헌신적인 학생들이다. 집회를 마친 학생들 5백여 명이 가두진출을 시도했다. 경찰의 강력한 저지에도 불구하고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시내 곳곳에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오후 6시에 교협 임시총회가 열렸다. 참석이 저조하여 한 시간 늦게 시작한 것이다. 단식이 무위로 돌아가고 공동대표들이 기소된 후 회원교수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총회에서는 대표들의 직위해제에 따른 문제부터 논의했다. 우선 직위해제로 받게 될 경제적 불이익(봉급의 80%만 지급됨)에 대해서는 회원들이 공동부담해서 차액을 메워주기로 했다. 또 이 문제와 관련해 오병문 교육부장관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내기로 했다.


힘을 잃어 가는 농성장 (3월 18-19일, 목-금)
  오전 내내 시내에서 지역인사들을 만나고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2시경 농성장에 올라갔다. 정문으로 가고 싶었지만 수위들이 막을 것이고 그들과 실랑이를 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택시기사에게 구차한 얘기를 하기도 지쳤다. 그래서 우산초등학교 정문에서 택시를 내려 봄풀이 막 돋기 시작한 산길을 걸어 학교로 들어갔다.

 

 삼월 중순의 산은 언제 보아도 기분 좋다. 갈참나무 가지마다 생명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멀리 기찻길 위로 빨간 색깔의 무궁화 열차가 달려가고 그 길 저 너머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며 피어오르고 있다. 이 순간에 내가 저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버린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잠시 떠들썩하다가 이내 평온을 되찾을까? 집은, 학교는...... 말도 안 되는 현실도피 공상을 하면서 걷고 있다 보니 눈앞에 체육관이 불쑥 나타났다.

 

 공판연기 신청을 위해 법원에 갔던 대표 세 분이 연기를 받고 돌아왔다. 재판은 4월 8일 2시에 열기로 했단다. 일단 시간은 번 셈이다. 이제 남은 20일을 최대한 잘 이용해야 한다. 조금만 더 버티면 잘 될 것 같은데, 농성장은 점차 힘을 잃어간다. 이날 회의에서는 재정문제가 주로 논의되었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많은 비용이 들 텐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모금을 하기로 하였다.

 

 3월 19일, 중앙일보에 ㄷ축산고 문제가 다시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중앙일보는 재단 측의 폐교방침과 주민들의 반대주장을 실은 뒤, 도교육청과 재단의 유착의혹을 제기하였다. 중앙일보는 재단과 교육청간 유착의혹의 근거로 학교의 매각대금과 맞먹는 13억원이 78년 이후 축산고 운영비로 지원된 점을 지적했다. 우리 재단은 국고에 납부한 축산고의 인수자금을 그대로 되돌려 받은 것이 된다. 국립고등학교라면 국민의 재산인 셈인데 그것을 특정인에게 팔았다가 대금을 다시 고스란히 돌려주었다는 것 아닌가? 재단으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가 따로 없다. 그래 누구든지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초기에 약간의 자금과 권력이 있고, 양심만 없다면.


바람은 결코 외투를 벗길 수 없다 (3월 20-21일, 토-일)
 오후 3시경 사교련 회장 김선종 교수와 인천대 장석우 교수 일행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이들은 수위들이 출입을 막아 정문에서 대치하고 있다가, 소식을 들은 김모 교수가 급거 출동해 몸싸움까지 한 끝에 간신히 올라왔다. 김선종 교수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2백일 넘게 철야농성을 하고 있는 우리가 안쓰러운지 벌써 여러 번 다녀갔다. 인천대에서 해직되었다가 복직한 장석우 교수는 인천대 싸움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지금 경찰서로, 법원으로 끌려 다니면서 고생하고 있지만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라고 격려하고 돌아갔다.

 

 

 

  

 

 

 

 

 

 

 

 

 

 

 

 

 

 

 김대식 교수가 전해오는 서울의 분위기는 완전히 우리의 승리로 귀결되어 가는 듯한데, 정작 학교분위기는 썰렁하기 그지없다. 정문수위들은 수시로 농성장에 와 ‘일지매(박정원)’를 찾고 있고, 외부인사들의 학교출입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회원교수들에게는 갖가지 통로를 통해 협박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농성장 당직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이날 저녁도 당직표에는 세 사람이 함께 당직을 하기로 되어 있지만, 결국 김모 교수가 또 홀로 당직을 하고 말았다.

 

  재단이 초강경으로 돌아선 것은 그만큼 입지가 축소되었다는 반증도 된다. 뭔가 다급해진 것이리라. 이사장은 민자당 당무위원에서 제외되었고, 신문에는 매일 재단의 비리가 실리고 있다. 특히, 공직자 재산공개는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그 분이 재산이 많은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으니까 어느 경로로든가 얘기가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초조하겠는가?

 

 그러나 오만한 재단이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태양과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는 이솝우화 말이다. 교수들에게 위협을 가해 자존심을 내팽개치게 하려는 것은, 바람이 힘으로 외투를 벗기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망한 일이다. 그렇지만 몇 명은 벌써 농성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농성에서 몇 사람 떼어내는 것이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닐진대, 재단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맹공을 계속하고 있다. 어쨌든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로부터 5년 뒤,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이 나오면서 내 일기장에서 다시 한 번 그 때를 되돌아보았다.






목록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번호 제목 저자 날짜 조회
  53장. 국공립대학화 운동 및 교육관계법 개악저지 투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4.05.19. 2485
  52장. 김찬국 총장 해임사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4.04.19. 2221
52   51장 드디어 복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2.21. 1996
51   50장 농성해제 (1993년 7월 22일, 농성 331일째)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2.14. 1471
50   49장. 초대 민주총장에 김찬국 선생 선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1.09. 2254
49   48장. 민주총장 추대 논의 개시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1.04. 1338
48   47장. 관선이사 백지화투쟁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27. 1769
47   46장. 기습적으로 파견된 관선이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12. 1664
46   45장. 시민대학건설을 위하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10.05. 1899
45   44장. 보직교수 연구실 폐쇄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9.28. 1805
44   43장. 정치수사로 끝나고 만 범죄수사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9.21. 1495
43   42장.학교공금을 부동산 매입에 사용?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24. 1625
42   41장. 이사장 검거되다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17. 1634
41   40장. 대반전 드라마의 시작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10. 1572
  39장. 햇볕정책을 몰랐던 구재단 박정원(상지대학교) 2013.08.03. 1519



1 /2 / 3 / 4 /

 
(151-832)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1632-2, 2층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로 594-1, 2층) / TEL : 02)885-3680
FAX : 02)6918-6882 / E-Mail : mingyo@chol.com / 후원계좌: KEB하나은행 630-005221-265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