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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종필의 훈장 추서 결정, 그 정치적 가벼움 혹은 조급함에 대해
저자 하상복(목포대학교)


 김종필의 훈장 추서 결정, 그 정치적 가벼움 혹은 조급함에 대해


김종필의 사망으로 공론의 장이 시끄럽다. 국민의 이름으로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이 정당한가의 논쟁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정부에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김종필이 사망한 23일 밤 기자들에게 훈장 추서를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사의 오랜 주역이셨던 공적을 기려 정부로서 소홀함 없이 모실 것"이라는 발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다음날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김종필에 대해 "한국사회에 남기신 많은 족적과 명암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충분히 국가에서 예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훈장 추서 문제에 대해 "특별한 논란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는 입장을 취했다(<군포시민신문>, 18/06/26). 결국 조문을 간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은 김종필의 영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바쳤다. 반대하는 목소리를 의식해서인지, 정부는 역대 국무총리들에게도 훈장을 수여해왔다는, 그렇기 때문에 김종필도 예외가 아니라는 행정적 관례로 후퇴하기도 했다.

김종필의 훈장 추서 논란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1년 8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의 국립 대전 현충원 안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적 대결을 떠올리게 한다. 안현태는 그해 6월 25일에 사망했지만, 국립묘지 안장 자격에 관한 합의가 매듭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40일이 지난 8월 6일에야 대전 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묻힐 수 있었다. 안장을 의결한 국가보훈처는 다음과 같은 논리에 입각해 있었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의 범죄 경력이 있지만 특별 복권되었으며, 베트남에 파병돼 국위를 선양했고, 1968년 1·21 사태 때 청와대 침투 무장공비를 사살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국가안보에 기여했다는 점 등이다(<서울신문>, 11/08/06). 안장심의 회의록 내용에 관한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심의위원들은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저지른 범죄가 아니었다면 훌륭한 군인으로 남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들어 안장을 승인했다(<한겨레>, 12/09/20). 국가보훈처의 안장 의결이 발표되자 5·18 관련 단체, 민주화 운동 단체, 민주당 등을 중심으로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1980년 민주화의 요구를 피로 짓밟은 전두환 정권의 핵심 인사가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김종필과 안현태는 정치적 공과의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들은 살아생전 자신들의 공적 경력에 대한 사회적 논쟁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런데도 국가는 그들에게 서둘러 국민적 영예의 표징을 부여했다. 한 사람은 훈장 수여로, 다른 한 사람은 국립묘지 안장으로. 아마 자신이 원했다면 김종필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국가발전과 국민의 삶을 위해 뚜렷한 공로가 있는 인물에게 부여하는 국민훈장 가운데 최고의 훈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훈장 추서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김종필은 박정희와 함께 한국의 이념적 정체성을 견고하게 지켜내고, 근대화를 위해 헌신한 인물로 해석될 법하다. 그러나 정의당을 필두로 하는 반대자의 관점에서 김종필은 헌정질서를 무력으로 전복한, 이후에도 권위주의 권력 유지를 위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온, 그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부정적인 인물일 뿐이다. 그 중간에서 우리는 그가 민주주의를 훼손했음에도, 1997년 DJP연합을 통해 정당 간 정권교체라는 민주화에 기여한 점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역사적 공과는 일단 뒤로 물리고, 그가 국무총리를 지냈다는 사실에 입각해 훈장을 추서한다는 정부의 논리도 이 자리에 포함해보자.

김종필은 훈장을 받은 여타 다른 국무총리와는 다른 인물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가장 철저하게 훼손되고 유린되는 역사의 시작인 1961년 군사쿠데타의 주역이라는 말이다. 그와 같은 반민주주주의 어두운 그림자는, 1997년의 정권교체를 포함해, 그가 아무리 한국정치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고 하더라도, 결코 상쇄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상황의 근원이 바로 1960년대의 군사쿠데타에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될 수도, 주변화 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김종필이라는 인물을 단순히 공도 있고 과도 있다는 식의 1차원적 정부 논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공적 인물에 대한 정치사회적 평가와 관련해 특별한 주목을 끄는 국가 사례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공적인 사자(死者)에 관한 대단히 엄격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791년 프랑스대혁명이 발명한 국립묘지 제도다. 프랑스의 국립묘지 팡테옹(Panthéon)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여기서 말한 '아무나'에는 최고 권력자 대통령도 포함된다. 그리고 공적 인물이 사망했다고 해서 바로 안장되는 것도 아니다. 명확한 법률적 기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10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준수하는 관례를 따르고 있다. 그 기간이 의미하는 명확하다. 사망한 자의 정치적 공과를 사회적으로 검증하고 합의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프랑스가 그와 같이 엄격한 안장제도를 통해 국민적 영예를 부여하는 전통을 수립한 데에는 대혁명기의 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91년 4월에 탄생한 국립묘지 팡테옹에 최초로 안장된 인물은 혁명가 미라보(Mirabeau)였다. 그러나 몇 년 뒤 미라보가 왕당파 세력과 내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혁명정부는 그를 혁명적 영웅의 전당에서 끌어냈다. 그 이후 10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공적 인물의 국민적 영예 자격을 세밀히 검증하는 제도를 확립했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경우는 당대에 국민적으로 위대한 인물로 불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국민적 영웅성을 서둘러 확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물며 정치적으로 공과에 관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 또는 그러한 논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는 인물이라면 그는 더더욱 오랜 검증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와는 달리 우리는 지나치게 서두르고 봉합하려한다. 안현태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시작되기도 전에 국가는 서면심사라는 예외적인 방식으로 그를 국민적 영예의 전당에 안장했다. 그 뒤에 전개된 그에 대한 윤리적, 공적 논쟁에 대해서 국가는 어떠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종필의 경우는 어떠한가? 안현태의 사례로부터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가? 훈장의 형식을 통해 국민적 영광의 존재로 만드는 데, 안현태를 안장하기 위해 걸린 40일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국무총리였기 때문에 그에게 훈장을 줄 수 있다는 논리는 그의 공적 행적에 각인된 반민주주의의 중대한 역사적 무게를 고려한다면 결코 정당화될 수 없어 보인다. 또한 그의 정치적 과오만큼 공적도 크다는 논리도 성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한 논리가 성립한다면 프랑스의 미라보는 대단히 억울할 것이다. 미라보는 비록 루이16세와 반혁명을 모의했지만 그럼에도 혁명의 물결이 도도히 흘러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미라보가 혁명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에 집착하지 않았다. 또한 그에게는 공도 있고 과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혁명을 이끌고 실천했다는 공이 있기 때문에 반혁명에 가담한 그의 과오가 지워지거나 용서될 수 있다고 판단하지도 않았다. 미라보를 국민적 영웅의 반열에서 끌어내리기로 결정했을 때 고려한 유일한 기준은 그의 정치적 과오였다. 그 드러난 과오 혹은 그 감추어진 의지는 혁명을 위해 헌신한 그의 모든 노력과 성과를 무효화해버렸다. 그와 같은 논리적‧이념적 엄격함이 작동했던 것은 혁명으로 탄생한 새로운 국가의 이념적 정체성이 혁명과 반혁명의 어중간한 타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혁명의 이념으로 세워질 국가는 그에 걸맞을 인격적 표상만이 정당성을 획득할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평가하고 있듯이 촛불혁명의 정신을 계승한 권력이다. 촛불혁명의 목소리는 권위주의와 반공주의와 지역주의의 거부다. 촛불은 민주주의의 확장과 분단의 극복 위에서 평화와 통일의 체제를 소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새로운 유토피아를 의욕적으로 실천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구현하려는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이념적 정체성은 결코 김종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군부 권위주의의 핵심이었고, 1991년 3당 합당을 통해 의회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장본인이었으며, 자민련이라는 지역정당을 만들어 충청지역주의로 권력을 이어간 인물이었음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필 개인을 향해 국가가 의례적 예를 표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상황을 대단히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한 개인이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정치적 세례를 받는 순간 그는 국민의 인격적 표상체로 전환되고 영속화되기 때문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의 훈장 수여 결정을 거둬들여야 한다.

공직을 수행한 인물이라면, 그 공과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시간을 쉽게 옆으로 밀쳐버리고 서둘러 훈장을 수여하거나 국립묘지에 안장하려는 정치적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애국주의의 과잉이다. 사회적 논의와 평가의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어 모든 공적 인물들이 그 그물을 통과하는지의 여부를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정치적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본 칼럼은 민교협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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