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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 정부 성공의 조건과 시민운동의 과제
저자 윤지관(덕성여자대학교)


진짜 개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민교협의 정치시평] 새 정부 성공의 조건과 시민운동의 과제

새 정부 들어 변화가 시작되면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80%를 넘기고 집권당의 지지율도 여타 정당들을 압도하는 등 국민의 기대가 높다. 권위주의를 벗어버린 대통령의 소통 행보에 국민들이 환호하고 검찰과 같은 권력기관이나 재벌에 대한 개혁의지를 담은 인사가 국민의 동의를 얻고 있는 것이다. 국정교과서 폐지나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지시하여 지난 정부의 억지가 불러일으킨 불필요한 갈등을 일거에 바로잡은 것도 시원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들은 큰 반발 없이 처리할 수 있는 '쉬운' 청산에 속하고 정작 어려운 과제들은 각 분야에 산적해 있다. 국정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보여주는 '통합'된 지지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개혁 작업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도 유지될 지는 의문이다. 시작이 좋다고 해서 끝도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적폐 청산이 국정 기조 중의 하나이지만 이 적폐를 무엇으로 보고 어디까지 청산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분명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이 초래한 혼란과 왜곡을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나 정치 현실만 하더라도 '적폐세력'으로 지칭해 마땅한 정당이 제1야당으로 버티고 있거니와 적폐를 기득권 구조로 이해할 경우 그 대상은 더욱 확장된다. 이처럼 적폐의 범위와 대상을 둘러싼 모호함이 존재할 뿐더러 여소야대의 현실 속에서 그 청산이 어디까지 가능하고 또 어느 정도 청산해야 국민 다수가 수긍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결국 국민의 동의여부가 이 정권의 성패를 가름하는 최종심급이 될 것이며 이는 한국 사회의 먼 장래까지 결정짓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가 맞고 있는 정치 여건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인수위도 없이 바로 집권한 탓에 아직 정부 구성도 하지 못한 상태다. 국무총리 인준은 이루어졌지만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조각 작업부터가 난항이 예상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통합과 협치는 민주 체제를 구축함에서 필수적이라 해도 적폐 청산과 기득권 구조 혁파라는 변화의 요구와는 충돌하는 지점들이 불거지기 마련이다. 민주당 정권은 화합을 내세우면서도 사회의 기존 이해관계를 큰 폭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즉 통합과 변혁이라는 두 모순적인 지향을 둘러싼 위험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변화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새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 민심을 거역하게 되고, 화합을 소홀히 하다가는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정쟁과 분열로 지샐 위험조차 없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위험한 협로를 뚫고 예정된 항해를 해낼 수 있을 동력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야당과 소통하고 협의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타협으로 일관해서는 사회 전체의 구질서를 바꾸는 일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대화를 피하지 않되 때로는 대화의 차원을 넘어선 과감한 결단을 통해서 현 상태를 다른 미래로 전화시켜나가는 변혁의 계기를 열지 못하면 오히려 국정의 동력 자체가 떨어질 것이다. 계급과 집단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좁은 의미의 정치를 넘어서 사회의 틀을 새롭게 짜는 진정한 정치가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진정한 정치의 원천은 이 정권의 탄생 자체가 그렇듯 여의도가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의 변화에의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민심이 촉구하는 바를 구현하고자 하는 슬기롭고도 담대한 기획과 실천이 없고는 정권의 성공은 보장될 수 없을 것이다. 

새 정부의 과제가 비단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에만 한정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령 수문을 개방하여 갇혀 있던 물을 흐르게 하는 조치는 시작일 뿐이다. 4대강 사업 재조사는 이명박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과정이지만 개발중심을 벗어나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정책으로 이어지는 순간 소위 원전 마피아를 비롯한 기득권 집단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세월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국가 안전체제를 바로 갖추어서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성을 수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 진상을 제대로 파헤치게 되면, 안전보다 이윤을 중심으로 굳어져온 산업구조와 그것을 뒷받침해온 기득권을 해체하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같은 기득권 구조는 보수 정권들이 산출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방향을 추구해온 이전 정부들에서부터 형성되어온 것이며, 다만 보수 정권 들어서서 그 악폐가 더 심각해졌을 뿐이다.

교육 부문은 어떤가? 무상급식 예산을 정부에서 부담하고 비리 사학을 징벌하고 교육부가 총장선거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조치가 적폐청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화여대 사태에서 극명히 드러났다시피 한국의 대학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왜곡되어 있는 것은 대학들이 상호경쟁의 도가니 속에 몰려서 본령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같은 신자유주의적 대학정책의 흐름은 기실 김영삼 문민정부에서부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보수 정권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것이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과연 대학이 변화할 수 있을 것인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새 정부에 부과된 과제가 지난 보수 정권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차원을 넘어서 나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이것이 '정권교체'를 넘어서 '시대교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명제가 말하는 바다. 6월 항쟁이 창출한 '87년 체제'는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문민 지배의 틀을 확립하였지만 그것조차 군부를 기반으로 한 보수 세력과의 타협을 통해 이룩되었던 탓에 진정한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데 장애 요인을 내포하고 있었다. 국민들이 국가의 강압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지만 재벌이나 기득권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하고 불평등구조는 갈수록 심화되었으며, 그럴수록 분단체제를 남한 내의 기득권 강화를 위해 악용하는 세력들이 득세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87년의 성취가 악몽으로 변하는 어두운 시대를 통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민적 저항으로서의 촛불혁명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되새겨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촛불혁명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의 정서에 힘입고 있지만 그 근본에는 불평등이 고질화되고 고착된 현실에 대한 광범위한 민중들의 불만, 특히 미래의 전망을 상실한 청년세대들의 좌절과 분노가 깔려 있다. 갖가지 적폐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좀 더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촛불모임 내내 분출되었던 것도 이제 질곡에 이른 기득권 질서, 어느 정도는 87년 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현질서의 재편이 요구되고 있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새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국정목표로 설정한 것은 이같은 생활상의 민중의 고통이 극에 달해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방편일 뿐 진정한 일자리 창출은 결국 분배의 정의를 실현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정당한 나눔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일정하게 해체하고 재편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의 기득권 구조를 반영하고 있는 정치현실 속에서 '협치'의 과정 자체가 개혁을 무산시키거나 방해하는 장치로 작용할 위험이 높다. 

국민의 힘을 통해 정권교체를 실현했지만 국가 개조를 위한 촛불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변화를 요구하고 추동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발휘되고 촛불혁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끈질긴 싸움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 적폐 청산을 넘은 기득권 구조 혁파를 얼마나 추구할 지도 미지수지만, 그 내부의 동력은 결국 국민 다수의 생활상의 욕구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야당과의 협치도 이같은 민중적 요구를 관철시키는 과정일 때 정치권의 야합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새 정부는 야당만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에서 국민과 협치해야 한다. 촛불시민들의 항쟁은 정권교체를 통해 완료된 것이 아니라 기성질서의 굳어진 틀을 바꾸어나가는 일상의 운동으로 지속될 때 진정한 의미를 획득할 것이다. 

민교협의 정치시평은 프레시안과 민교협 홈페이지에 공동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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