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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으로 기억하기
저자 이광수(부산외국어대학교)


 

사진으로 기억하기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사진은 기본적으로 기계를 통한, 뒤집을 수 없는 현존의 증언이다. 카메라는 그 본질상  파편화 된 모습을 담을 수밖에 없다. 연작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산문을 통한 역사 서술과 같은 서사를 제공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사진이 역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역사 이론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그 추상성을 구체적인 사실성으로 만들어준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카메라는 거대 역사 담론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는 필수적이다. 카메라를 쥐는 사람이 역사의 의미를 갖기만 한다면 그들은 국가, 민족, 계급, 종교의 이름 안으로 포섭되어 사라져버린 이 사회의 다양한 하층 인민들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다. 그 안에는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어린이, 이주민, 디아스포라, 장애인, 환자, 노인, 동성·양성애자 등이 모두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매우 즐겨 찾는 소재들이다.


 사진은 예술의 영역에 있다지만, 그것은 여전히 창조는 아니다. 사진을 또 하나의 독립된 물질로서 창조의 예술로 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창조성이 그림과 같은 정도는 아니다. 사진은 그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여전히 그 본질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전사하고 재현하는 과학적 복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작가는 원칙적으로 직접 개입을 할 수가 없다. 그 불개입의 재현은 또한 단절적이다. 영화와 다른 성격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한 컷, 한 컷이 떨어져 있고, 작가가 직접 개일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진을 읽는 사람의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장르의 예술이 된다.

 

 사진은 의미 전달에 있어서 말이나 글보다 훨씬 큰 힘을 갖는다. 이미지가 말이나 글보다 더 함축적이어서 그러하다. 사진은 현실을 복사한 장면에서 객관성을 획득하고 그 위에서 자신의 경험과 상상을 연계시켜 감정을 확장시킬 수 있는 여지를 무한히 만든다. 그래서 글이나 말을 통해 어떤 사건에 이미 익숙한 상태일지라도 그 장면을 다시 사진이라는 이미지로 접하면 더 깊은 격정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직접보다는 간접이, 연속보다는 단절이, 직유보다는 은유가 더 큰 경이감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의 시간은 모두 다 과거이다. 그 어떤 행위라도 사진 안으로 들어가면 흘러가버린 기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사진은 기록임과 동시에 기억에 대한 기록이 된다. 과학적 방법을 통해 사실로 표현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카메라를 쥔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풀어내는 하나의 기억이다. 사진의 본질이 기억이라는 사실은 그것의 또 다른 본질인 단절성과 어우러지면서 해석의 여지를 크게 만들어낸다.


 사진은 참으로 독특한 고유 언어를 가진 것이다. 그 독특한 언어의 힘 덕분에 사진은 서사 구조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서사는 어떤 특정한 내용과 구조 안에서 제한되지 않고, 일정한 맥락을 유지하지만 해석이 동심원 같이 무한정 퍼져나가는 것이 된다. 사진이 서사 구조를 가장 분명하게 갖는 것은 흔히 말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다. 보통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는 사진은 특정 주제에 따른 유용한 정보가 있는 사진을 말한다. 그 사진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의 절박한 위기에 봉착한 사진가들이 심미적 경향을 일부러 멀리하고 좀 더 사회 운동적인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일반화 되었다. 그런 경향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거대 담론 위에 선 서사 구조를 명확하게 갖든 그렇지 아니하든 사진 특유의 큰 울림을 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보기에 따라서는 그 어떤 문학이나 예술의 장르보다 막강한 사회 운동의 추동력이 될 수도 있다. 난, 이를 사진이 갖는 그 독특한 언어의 힘이 주술과 의례의 힘으로 발산되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다큐멘터리가 기록의 일환으로 출발했다가 사회 운동의 방편으로 자리 잡은 것은 바로 사진이 갖는 이 독특한 속성을 사회 전반이 이해하고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이나 가난 혹은 소외나 편견과 같은 사회 구조에 대한 싸움을 시작할 때 사회 운동가들이 항상 사진을 들고 시작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그 싸움은 처음에는 자극적인, 더 자극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 자극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질리게 만들어버리거나 솟아나는 감성을 더 뭉개버리는 결과를 만들어버렸다.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는 시체 더미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인종 청소’의 잔혹함에 길들여진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작가들이 잔혹한 이미지가 아닌 감성을 자아낼 수 있는 이미지로 서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사진의 주술적이고 의례적인 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것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그 형식으로부터 어떤 쾌(快)를 독자에게 전달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수잔 손택은 예술은 인간의 관념이나 도덕률을 강조하기 위한 의식의 노예가 아니라, 심미적 쾌감을 통해 인간이 가진 감성을 고무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좋은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사건에 대한 옳은 서사뿐만 아니라 심미적 쾌도 자아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 이광수. 2009. 베트남 호치민시티.
한국의 많은 좌파 진영 사람들은 아직도 베트남은 미제와 싸워 이긴 공산주의 국가라고 인식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 기술일 뿐, 개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많다. 그런 속내를 글을 통해 길게 풀어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진 한 컷으로 말 할 수도 있다. 이 사진은 ‘호 아저씨의 나라’의 연작 안에 들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난, 개인적으로 역사를 재현하는 즉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이 키를 쥐는 사진. 관객 한 사람 사람이 자신의 느낌에 따라 느끼는 사진. 평론가가 특정 담론에 따라 해석하여 관객을 그 분석 같은 해석에 따라 다니게 만들 여지가 없는 사진, 그런 사진이 좋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대개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 같은 사진, 그런 사진이 좋다. 독창적이지 못하고 그래서 예술의 경지에 올라, 아는 만큼 보이는 그런 사진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진, 그런 사진을 찍는 것이 좋지 않은가. 모두가 다 작가,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차원에서 역사를 기억으로 환원할 수 있다. 누구나 보는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 아닌 나만이 해석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그 위에서 다른 사람도 그 권리를 같이 누리는 사진 그런 기억의 사진을 한 번 찍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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