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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정을 표현하는 사진
저자 이광수(부산외국어대학교)


 

감정을 표현하는 사진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사진은 이미지다. 따라서 그 안에는 상징의 코드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상징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한다. 하지만, 상징은 인류 보편적인 것도 있으므로 그에 의거하여 사진 작업을 하면 서로 다른 문화권과 사회에서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일정하게 보편적인 느낌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를 상징이 갖는 스투디움의 세계라 한다.


 근대 사진을 연 작가로 평가받는 미국의 스티글리츠는 대상과 자신의 내면을 동등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진을 찍어 자기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회화적 사진과 사실적 사진을 벗어난 새로운 사진의 세계를 이끌었다. 그는 '동등(equivalent)' 이론에 따라 작가는 자신의 눈이라는 감각을 통해 접하는 시각적 사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시각이나 촉각 등 인간의 감각은 그 본질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에 방해하는 폭군이라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사진이란 우리 눈에 드러난 외형이 고유의 상징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사건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진은 대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사진이다. 객관적인 현실을 자신의 은유적 표현으로 상징을 띠게 하여 감정 이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흔히 보는 대상과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감정 이입의 사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의 원리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사진은 프레이밍을 전제로 하는 행위다. 작가가 눈으로 보는 대상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틀 프레임 안으로 집어넣고, 나머지는 배제하는 것이 사진의 원리 가운데 으뜸이다. 사진은 붓이나 조각칼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작가가 대상화 하는 소재를 인위적으로 더하거나 빼거나 나눌 수 없는 광학 기계의 상물이다. 렌즈에 빛을 받아들여 이미지로 만들어놓는 과정까지 행위자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다 (단 최근 장르를 파괴하는 차원에서 필름에 직접 손을 댄다거나 하는 것을 제외하고서) 그래서 사진은 철저히 기계적이고, 그 기계는 사각형 프레임을 통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철저히 탈맥락적이고, 단절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대상은 모든 보는 눈이 동일하게 보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느 사각형 틀 안으로 한정시켜버리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구름을 대상으로 하여 이런 사진을 찍었다. 사진의 대상은 구름이지만, 그 구름을 통해 작가는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할 수도 있고, 천지창조의 숭고함을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은 변화무쌍한 색(色 rupa)의 세계이지만 자신은 세상을 모든 색의 원천인 흑과 백의 세계로 본다면 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런 경우 대상은 칼라지만 자신은 흑백으로 바꿔 표현하면 된다. 그 안에 작가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그렇겠지만, 나는 이렇게 봤다는 것이다. 세상은 숱하게 변해 왔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본질은 그대로 있고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면 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변화하지 않은 거대한 돌이나 나무 혹은 물의 고요를 이미지로 표현하면 그만이다.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추억의 그 상념의 그 시간에 젖어 있는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파도로 표현할 수도, 흙을 가지고 표현할 수도, 낙조를 통해서도 표현할 수도 있다.


 어떤 사진을 보면, 불교의 선문답 같이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가슴이 서늘해지는 정서에 큰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있다. 그 안에 드러난 그의 시간은 지각할 수 없고, 세계는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기묘하게 끌려가는 지남철의 자장과 같은 공간이다. 그 알 수 없는 기(氣)의 세계, 느낌의 세계 그것은 사진 안에서 얼마든지 표현 가능한 공간이다. 사진을 통해 감각으로 둘러싸인 객관을 배제하고 감각의 저 편 안에 존재하며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표상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고 부르짖고 싶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그 사물이 분명히 존재하는 그 어둠의 세계를 찍으면 그만이다. 어둠은 존재자를 감추면서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존재마저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존재한 듯 존재하지 않은 듯 그것을 표현하면 된다. 칠흑과 같은 밤을 둘러싼 사물은 작가의 눈을 통해 그 존재를 비(非)은폐 하는 것이 되고, 그 안에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사진가는 이렇듯 느낌과 감정을 넘어 철학까지도 이미지로 표상할 수 있다.

 

 

 

  ⓒ 이광수. 2008. 북한 개성.
2007년 말부터 몰아닥친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는 그 분당에 지지를 하는 쪽이든 그렇지 않은 쪽이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냈다. 나는 선도 탈당파였지만, 내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마음 곳곳에 생채기가 나듯, 그 생채기 위에 칼날 같은 말의 바람이 불 듯, 북녘 땅 개성의 어느 눈밭은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사진으로 쓰는 은유의 시다.


 

 

 이런 류의 사진의 세계는 전적으로 객관적이거나 역사적이지 않다. 누구나 볼 수는 있으나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작품이라 내세우는 일은 사회의 지식과 앎으로부터 스스로를 소격시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역사는 아닐지라도 문학이나 철학의 세계는 될 수 있다. 어떤 경우 그런 사진 안에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의식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회 언어로 형상화 할 수 있거나, 형상화 하고자 하는 그런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만의 의식, 주체적 의식은 곧 사회의 지배적 위치에 서긴 하나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집합체인 다수성이나 효율성에 대한 거리 두기이기도 하다. 그것이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지 내면 세계의 성찰로 이어질지는 작가의 몫이다.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해서도 안 되는, 엄밀하게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피 끓는 혁명에서부터 자살하고 싶은 충동까지, 사진은 다 표현할 수 있다. 단, 다큐, 역사, 사실, 계몽, 객관 등과 같은 틀로부터 자유로워지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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