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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뮬라크르를 이해해야 현대 사진을 안다.
저자 이광수(부산외국어대학교)


 

시뮬라크르를 이해해야 현대 사진을 안다.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이지만, 사방이 거울로 된 유리방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곳에서 자기 자신은 몇 명이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어느 거울 하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다른 거울을 통해 복제되고, 그것은 다시 반사되어 또 복제를 한다. 무한 복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한히 복제를 하는 행위를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라 부르고, 그 시뮬라시옹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모두 시뮬라크르(simulacre)라 한다. 그 거울 방 속 시뮬라크르로 가득 찬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를 비추기 때문에 무엇이 실재고 무엇이 복제인지 알 수가 없다. 모두가 모사의 모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세상은 완전한 시뮬라크르인 것이다.


 들뢰즈가 보기에 정치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일정한 목표를 정해 놓고 끊임없이 변화에 매진하는 인간은 천상 시뮬라크르다. 그래서 들뢰즈가 보기에 근대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진보적이고 역사적인 인간은 이데아에 의거하여 기준이 세워져 있는 위계에 매달리는 각박한 허깨비일 뿐이다. 결국 들뢰즈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에서 차이와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예술 또한 끝없는 변화 속에서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위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들뢰즈가 감각이 이성에 대해 우위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그 감각은 이성에 선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감각 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정신으로 퍼 올리는 인식론적 현상이 아니고, 감각 기관에서 직접 몸으로 내려가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그에게 만질 수 없는 관념은 허상일 뿐이다. 그 안에서 깨달음은 오로지 만질 수 있는 물질을 통해서만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관념론을 부정하고 물질론 위에 우뚝 선 포스트 모던의 사건이다.


 그 물질론적 세계에서 인간은 사물을 어떻게 지각하는가?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고, 보이는 것은 보는 것인가? 사물을 지각할 때 인간의 눈은 쉴 새 없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사물은 눈의 각막을 통하고 시신경을 거쳐 뇌로 전달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변화하는 것들을 포착해 전달한다. 그런 가운데 지각되는 세계는 최종 결과인 사진처럼 일목요연하지 않고 산만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학습된 지각의 결과에 따라 그 대상을 질서정연하고 일목요연한 상(像)으로 인식한다. ‘정신’이라는 고정된 눈 때문이다. 움직이는 육체의 눈에 따라 표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들뢰즈가 의미하는 화화나 사진의 재현은 모더니즘이 규정하는 근대 그림의 규칙 즉 원본에 대한 모사를 파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안에서는 모더니즘이 그 모사의 결과로 만들어낸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들과의 사이에 맺어진 서사적 관계 또한 응당 파기해야 한다. 그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보이게 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에너지는 여러 기관으로 분화되기 전 미분화된 원초적 감각에서 나온다. 거기에서 청각, 시각, 촉각 등 다양한 개별 감각들이 나타난다. 그 개별 감각들은 각각 하나의 자극을 여럿으로 느끼게 한다. 바로 ‘착란’이다. 들뢰즈는 이 ‘착란’이야말로 예술에서 창조성의 근원이 되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예술이란 정해진 옳고 그름의 잣대에 따라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대신 그 변화하는 외형의 차이를 즐기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이동이야말로 독자 개개인에게 해석의 다양성을 주고 그래서 더욱 풍부한 감정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결국, 그에게 예술은 의미 작용을 무효화하고, 주체를 해체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미 존재하는 상투성의 틀을 전복하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생성해내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감각으로 만나는 진실은 이미 존재하는 일반적 형태나 틀이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종류의 모범도 없다. 표현된 것들 사이에는 어떠한 동일성도, 유사성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들뢰즈 예술론의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인 ‘차이’다.


 ‘차이’는 두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반복적으로 발생한 변화에서 생긴 불일치이다. 그것은 정체성과 아무 관련을 갖지 않는 것으로 차이 그 자체일 뿐이다. 따라서 차이를 표현하는 예술은 결국 비재현적인 것이고, 개념 파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무한질주의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연속물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은 원본과 정체성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시뮬라크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차이들이 연속물로 생성되는 것이다. 모든 대상은 각 순간마다 달리 지각되기 때문에 예술의 표현 또한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 혹시 보이는 것이 허구라면, 보는 주체나 보이는 대상 또한 허구는 아닐까? 들뢰즈에 의하면 보고 인식하는데 필요한 여러 구성 요소 즉 눈, 시신경, 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본다’는 행위가 일어나지만 사실 그것은 눈이 이동하면서 잡다하게 보는 것을 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나타내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래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 감춰진 것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야 말로 예술이라고 했다. 무엇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이미 눈으로 본다는 작용 이전에 발생한 상태이며,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식의 현상을 해석하여 객체로 구분하려는 자아의 착각일 뿐이다.

 

 

 

                                   

                                                                                                 ⓒ 이광수. 2008. 서울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천막농성을 하는 ‘시간강사’ 김영곤 교수다. 그가 강의를 들어가기 전에 시간강사 휴게실이라고 지정되어 있는 작고 허름한 어느 방에 가서 교정을 쳐다본다. 그 모습을 통해 나는 그 안에 또 다른 그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는 모습이 허상일 수 있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비로소 사진은 찍고 프린트 하는 것이 아니고 만드는 것으로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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