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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떨치기 어려운 『금각사』의 망령
저자 조돈문(가톨릭대학교)


추천 도서 목록

 * 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 허호 역, 「금각사(金閣寺)」,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2002.

 

 

 

 

떨치기 어려운 '금각사'의 망령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내 인생의 명저를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 교훈이나 감동을 준 책으로 정의한다면 소설 금각사는 분명 그런 범주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금각사는 다른 어느 책보다도 더 자주 내게 나타나서 여러가지 물음들을 던져준 책이다. 지난 여름 베를린 박물관들을 방문했을 때도, 파리 에펠탑에 올랐을 때도 맨 먼저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금각사였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어떤 계기가 있어 소설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이후 35년 기간 동안 나는 금각사를 다시 들쳐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금각사가 나를 떠나지 않고 자주 기억되는 데에는 무슨 까닭이 있었을 게다. 그것도 한반도를 유린한 일본제국의 이야기를, 나와 이념적 대척점에 서 있는 극우 작가 미시마 유끼오를 통해서 만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고, 일종의 악연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금각사와 만나다

 

  내가 금각사를 만난 것은 대학교 2학년 봄학기가 시작된 직후로 기억된다. 가까운 친구가 겨울방학에 읽었다며 내게 일독을 권했다. 그 책이 몇 년전 자위대를 기습 점거하여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다가 자위대원들의 냉소에 절망하여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끼오의 소설 금각사였다. 일본 국보급 사찰에 불을 지른 어느 젊은 중의 실화를 소설화한 것이란다. 제정신이 아닌 작가의, 제정신이 아닌 인간의 얘기라 별로 내키지 않는 책이었다. 하지만 금각사는 내게 전혀 다른 이유로 흥미를 갖게 했다.


  당시 내 머리 속엔 승려가 되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10월 유신 친위쿠데타가 발발한 뒤 국회의사당 앞을 장갑차가 막아서고 군사정권은 유신헌법을 선포했다. 법대 진학 이외에 다른 진로란 없는 것으로 믿고 재수생활의 따분함을 헌법과 불경 공부로 소일하던 내게 그것은 세상이 통째로 무너져내리는 충격이었다. 헌법을 절대적 가치의 구현으로 믿고 있었던 법대 지망생에게 장갑차를 앞세운 군부독재 하에서 헌법이 너무도 쉽게 유린되는 현실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나는 불교학과에 진학하여 승려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고3 시절 데모를 주동하여 부모님께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던 죄인이 병마와 싸우는 어머님께 차마 드릴 수 없는 얘기였다. 법대는 죽어도 못 가겠지만, 불교학과 또한 택도 없는 소리였다. 아버님의 완강한 법대 진학 강요에 맞서, 나는 불교학과에서 철학과로 후퇴했고, 결국 철학과도 문리대도 버티지 못하고 경영학과로 타협하게 되었다.

 

 

  하지만, 승려는 여전히 나의 꿈이었고, 대학 생활이란 자괴감이 일상화된 잔인한 시간의 연속일 뿐이었다. 승려가 될 날을 기다려야만 했던 내게 대학에서의 하루하루는 늘 뿌연 안개 속에서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 같았고, 가끔씩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늘 헛것들 속을 헤매고 있는 듯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마시는 술, 내가 던지는 돌, 그 모든 것들이 존재의 실체가 없는 헛것처럼 느껴지던 시절. 하지만, 세속의 인연은 예상보다 질겼다. 모진 마음을 먹고 어머님께 말씀드리려 했던 겨울방학은 그냥 지나갔고, 쉬이 끝내리라 했던 대기기간은 1년을 넘기게 되었다. 초조함과 불안감이 고조되던 그 즈음 금각사를 만난 것이다.


  어떤 이들이 평생 읽을 독서량보다 몇 곱절 더 많은 분량의 문학서적을 읽은 내 대학시절. 또 하나의 소설을 집어드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금각사가 별로 내키는 선택은 아니었지만 이웃나라 불사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가벼운 호기심을 갖게 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내 실망했다. 고고한 불승의 삶과 고뇌는 거기에 없었다.

 

 

  금각의 초연한 아름다움

 

  금각사는 어느 시골 절 대처승의 가난에 찌든 가정에서 태어나, 부친이 세상을 떠나며 금각사에 의탁된 한 젊은 도제승의 얘기이다. 도제승은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금각의 아름다움에 대한 극찬을 들으며 자라는 가운데 세상 모든 아름다움의 위에 상상 속의 금각을 올려놓게 되었다. 상상 속의 금각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고, 금각사에 의탁되며 마주하게 된 금각은 상상의 실체를 확인해 주었다. 소설 금각사는 금각의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묘사들로 독자들을 금각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게 한다. 물론, 미시마 유끼오의 빼어난 문체도 단연 힘을 발휘한다.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도제승에게 금각사는 가까이 하기 어려운 미모의 여인과 같은 존재였다. 가난, 비천함, 말더듬이, 추남으로 묘사되는 도제승은 여인의 경멸 속에서도 경탄과 흠모의 정을 떨치지 못한다. 금각의 한 구석진 방에서 행해진 어느 해군장교의 전별식 장면에서 세속의 아름다움은 금각의 아름다움과 하나가 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속저고리 비단 옷자락의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출정 애인의 찻잔을 향해 조금씩 형체를 드러내는 여인의 젖가슴, 그것은 문틈으로 훔쳐보는 도제승의 숨을 멎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인의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짝사랑 하던 이웃 여성은 탈주병 애인을 밀고하고 그 애인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했고, 전별식의 꽃꽂이 여선생은 안짱다리 친구의 정부가 되어 나타났다. 세속의 아름다움이 모두 망가져도 금각의 아름다움은 더욱더 높고 찬연했다.

 

 

  남천의 법, 남천의 고양이

 

  금각은 세속의 경계를 넘어 우뚝 솟아 초연히 빛나고 있었지만 그 찬연함은 조금씩 어두운 빛깔로 바뀌기 시작한다. 도제승에게 새로운 시각을 접하게 한 것은 안짱다리 친구였고, 그것은 중국 불가의 고사로 표상되고 있다.


  남천참묘아(南泉斬猫兒), 조주두대초혜(趙州頭戴草鞋). 당나라 시대 선승인 남천은 젊은 승려들이 산속에서 발견한 예쁜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싸움을 벌이는 것을 목도하고 낫을 들어 고양이의 목을 베었다. 저녁 무렵 돌아온 제자 조주에게 묻자 조주는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갔다는 일화였다. 금각사는 아름다움과 고해가 다르지 않고 남천의 법이 충치를 뽑는 것이라면 조주의 법은 충치의 고통을 안고 사는 것이라고 비유한다.


  안짱다리는 자신감에 가득찬 모순 덩어리 같은 존재였다. 그의 앞에서는 여인의 아름다움도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그는 아름다움을 잔인함과 파괴로 완성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 잡힌 꽃가지들은 수반위의 꽃꽂이를 위해 거침없이 잘려 나갔고 잘려나간 줄기들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선혈이 낭자한 꽃꽂이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그는 무사의 섬세함과 잔혹함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어두운 색깔로 채색하며 도제승에게 같은 현실의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도제승은 그렇게 안짱다리 친구를 통해 남천의 법을 배운 것이다.

 

 

  금각의 아름다움은 어둡게 빛난다

 

  어둡게 채색되는 금각의 아름다움은 작품의 긴장감을 더해가며 마지막 구절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금각은 태초에 어느 군벌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금각은 어두운 마음과 불안감을 내재하며 잉태되었던 것이다. 전쟁 발발 이후 전황이 역전되며 곳곳의 패퇴 소식과 함께 일본 열도의 공습이 빈번해졌고, 금각은 더욱더 초연함을 뽐내고 있었지만 엄습하는 불안감을 떨쳐내기는 어려웠다.


  전쟁의 패색이 짙어가며 반복되는 공습 속에서 전화로 소실되는 신사(神社)들을 아래로 하고 금각은 더욱더 세속으로부터 초연한 아름다음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도제승의 불안감과 내면의 분열은 점점 더 견디기 어려운 무엇이 되고 있었다.


  금각의 아름다움이 시공을 초월하여 빛날 수 있게 하는 것은 금각을 딛고 선 봉황이었다. 흐르는 시간이 넓게 편 봉황의 날개에 부딪치며 흘러가고, 봉황은 그렇게 억겁의 시간 속을 날고 있다. 숨가쁜 날개짓으로 공간 속을 헤매는 세속의 여느 새들과는 달리 봉황은 금각을 발 아래 품고 끝없는 시간 속을 난다. 하지만 열도의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도제승은 금각의 다른 모습, 불타는 금각을 갈망하기 시작한다. 금각의 불길 위에서 봉황이 새로운 기운을 얻어 다시 억겁의 시간 속으로 날아가는 것을 꿈꾸게 된 것이다.


  불타는 교토, 불타는 금각을 꿈꾸며,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렸지만, 끝내 금각은 불타지 않았다. 전쟁의 패망으로 무수한 신사들과 함께 살아 있던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고 파괴되었지만 금각은 여전히 눈부신 햇살 속에 초연히 빛나고 있었다. 불가와 세속의 경계를 넘나들던 도제승에게 금각은 전시 공습 속의 불안감에서 이제는 배신감으로 전화되고 있었다. 결국, 도제승은 세속으로부터 초연한 절대적 아름다움을 견디지 못하고 금각에 불을 지른다.

 

 

 

금각사 [金閣寺(긴카쿠지)],  일본 교토 기타야마

 

 

 

  패전국 독일과 프랑스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국가들은 미국을 제외하면 모두 패전을 경험했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대륙은 거의 모두 전쟁 발발 직후 순식간에 독일의 지배권 하에 떨어졌고, 승승장구하던 독일도 결국 참혹한 패배를 맞게 되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모두 전쟁의 패배를 겪었지만 베를린과 파리의 시가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베를린은 건축박람회장을 방불할 정도로 온통 새로운 기법의 건축물들로 붐비고 있다. 폐허가 된 시가는 새로운 건축기술과 예술적 시도들의 이상적인 실험장이 된 것이다. 그나마 간간이 남아 있는 중세풍의 박물관 건물 외벽에는 미처 메우지 못한 총탄 자국들이 아직도 즐비하다. 한편, 에펠탑에 오르면, 파리 시가는 아주 잘 정돈된 중세 도시의 형상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개선문에서 루브르 박물관과 노틀담으로 이어지는 파리의 상징물들은 온전한 모습으로 당당함을 과시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이러한 파리의 상징물들을 보며 자부심을 느낄까? 프랑스의 자존심이 이처럼 온전하게 지켜진 것은 너무도 쉽게 독일군의 지배를 수용한 탓은 아닐까? 독일의 프랑스 점령 과정이 치열한 공방과 함께 진행되었다면 아마도 프랑스의 자존심들은 포화와 공습 속에서 엄청난 파괴를 겪게 되었을지 모른다. 물론 전쟁 종료 이후 노틀담에 불을 지른 성직자는 없었다.


  놀라운 것은 퇴각하던 독일군이었다. 그들은 파리를 포기하며 루브르의 문화사적 장물들을 탈취하지도 않았고, 프랑스의 자존심들을 파괴하지도 않았고,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을 끊지도 않았다. 물론, 황급한 퇴각이었을 수도 있었고, 전세 역전의 가능성을 포기했을 수도 있었고, 파리의 아름다움과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게다.


  홀로코스트와 동성애자 박해의 역사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은 그들에게 더 이상 전범국의 죄를 묻기 어렵게 한다. 반면, 조선의 상징공간에 난도질을 하며 역사성을 분쇄하고 백두대간 곳곳의 혈처에 쇠말뚝을 박아 한반도의 정기를 끊고자 했다는 일본제국 군대의 치밀함에는 소름이 끼친다. 사라진 것에 대한 추모와 남은 것에 대한 증오, 파괴된 것에 대한 사과와 되살아 날 것에 대한 저주처럼 독일과 일본의 역사인식은 대조적이다. 물론 한 도제승의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금각사의 망령은 파리에서도, 베를린에서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봉황은 어디로 갔을까?

 

  일본을 다녀오는 지인들에게 늘 금각의 안부를 묻곤 했고, 그들은 내게 금각의 엽서와 엠블럼들을 가져다주며 금각의 온전함을 알려 주었지만 봉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불길과 함께 날아간 봉황은 다시 돌아왔을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내가 금각을 찾은 것은 4년 전이었다. 금각은 연못위에 뜬 채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 꼭대기에 봉황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꿈속에서 수 차례 만난 바 있었던 억겁의 시간을 나는 그 봉황이 아니었다. 그것은 취객의 콜을 기다리는 짙은 화장의 게이샤처럼 금분을 뒤집어쓴 금각의 족쇄에 묶여 있었고, 억겁의 시간이 아니라 날개에 부딪히는 시간조차 버거워하는 모조품 봉황에 불과했다. 그것은 시장에서 쉽게 취할 수 있는 여느 새와 다르지 않았다.


  금각은 소실된지 5년이 지난 1955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도제승이 금고형을 마치고 세속으로 되돌아왔을 즈음에는 아마도 금각의 복원은 거의 마무리되었을 게다. 도제승은 20대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금각을 불살랐던 도제승, 그 도제승은 세상을 떠났지만 금각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금각의 방화는 도제승의 배신감뿐만 아니라 전시 징집을 기피한 바 있는 미시마 유끼오의 죄의식이 함께 발현된 행위로 보인다. 그들은 남천이 되어 금각에 불을 질렀지만, 금각은 조주의 짚신이 되어 제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다. 다만 억겁의 시간을 날던 봉황은 금분으로 덧칠된 모조품으로 돌아와서 더 이상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제국의 전쟁이 그러했듯이, 금각의 방화도 미완의 세계를 완성하지 못했고, 역사의 진보를 이루지도 못한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고...

 

  우리 모두 조주의 법보다 남천의 법에 친숙한 듯 보인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베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베고... 그렇게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부처를 벤 자리에 부처가 되살아나고, 조사를 벤 자리에 조사가 되살아나고, 나한을 벤 자리에 나한이 되살아나는 세상 이치를 거듭 거듭 경험했건만, 낫을 든 중생은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낫을 들 수 없으면 조주의 법을 따르고, 낫을 들 수 있으면 남천의 법을 따르는 것, 그것은 남천의 법도 조주의 법도 아닌 중생의 처세일 뿐이다. 도리어, 미혹한 중생의 법을 뒤집을 때, 남천의 법과 조주의 법이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을 금각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금각을 찾을 무렵, 나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들에 부는 좌파집권 붐을 연구하고 있었다. 금각을 만난 이후 좌파집권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좌파가 집권 시기 무엇을 이루는가보다 실권 뒤에도 남을 좌파의 실험은 무엇일까가 더 궁금하게 다가왔다. 이른바 변혁의 불가역성(不可逆性).


  소설 금각사는 몇 개의 키워드와 함께 내 영혼에 출몰하며 갖가지 상념들을 불러왔다. 어쩌면 금각사에 대한 나의 오독, 잘못된 기억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이 글은 민교협 홈페이지와 ‘프레스바이플’에 공동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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