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목적 창립취지문 및 규약 연혁 조직구성 임원소개 약도 회원가입안내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영화를 읽다

이 한 권의 책

사진 에세이

민교협의 정치시평

2017.09.18.
분노하라, 그리고 저항하라.
이무성(광주대학교)

분노하라, 그리고 저항하라.이는이 시대의 진보를 위하여 '분노하라' 고 외치고 평생을 이를 실천하였던 프랑스 레지스탕스…

나의 교육민주화 투쟁기

통합검색
이 한 권의 책
이 글을 twitter로 보내기 이 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이 글을 Me2Day로 보내기 이 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이 글을 C공감으로 보내기
조회 2243
글자 크게 하기 글자 작게 하기 프린트
제목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저자 고부응(중앙대학교)


추천 도서 목록

 *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 권화현 역, 『공산당 선언』, 웅진씽크빅, 2010.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고부응(중앙대학교 교수)

 

 


 젊은 시절 공산당 선언을 처음 읽었을 때 떨리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문장 하나하나, 설명 하나하나, 주장 하나하나가 모두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말들이었다. 공산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말, 계급투쟁이 역사적 필연이라는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문장,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 진정한 공산주의를 위한 기존의 여러 아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를 해방시킨다는 “잃을 것은 족쇄뿐이고 얻을 것은 세상이다”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외침을 읽으면서 나는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곧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전율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의 결의를 다지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공산당선언의 마지막 문장이 현실에서 실현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았다.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봉건체제를 무너뜨렸지만 그 새로운 체제는 유지되지 않았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일시나마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구축하였던 소련은 해체되었다. 소련과 더불어 사회주의 국가체제의 다른 한 축이었던 중국은 이제는 국가 주도 자본주의 체제로 변해버렸다. 그 밖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기는커녕 노동자들은 더욱 더 억압받고 더욱 더 착취당하고 있다. 공산당선언의 주장은 틀렸고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폐기되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믿음을 갖고 공산당 선언을 읽는다. 나는 오늘이나 내일 일어날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레쯤 있을 혁명을 꿈꾸며 공산당선언을 다시 읽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 공산당선언을 선동을 위한 글이 아니라 노동계급 이론으로 읽는다. 마르크스의 자본이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론이듯이 공산당선언 역시 자본과 노동의 역사 이론이라고 이해한다.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은 소수의 운동이었던 과거의 운동과 달리 압도적 다수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해 그들 자신들의 의식적이면서 독립적인 운동이라고 선언한다. 물론 이러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은 당시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곧 한 국가 내에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일어나고 또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공산당선언을 다시 읽으며 공산주의 혁명은 19세기나 20세기에 일어날 수 있는 혁명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공산당선언에서 설명되는 부르주와 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형성과정과 그 두 계급의 관계를 고려해본다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조건은 이 글이 쓰인 19세기 당시에도 갖추어지지 않았고 현재도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들은 아직 혁명을 일으키고 이를 성공시킬 만큼 집단적으로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들은 부르주아 계급이 봉건계급에 대해 계급투쟁을 벌일 때 부르주아 계급의 사병 역할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부르주아 계급의 사병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라곤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자본주의 형성기에 봉건계급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투쟁에 사병으로 동원되었다면 현재는 프롤레타리아트 자신들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계급투쟁에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산당선언의 첫째 장인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에 처음 나오는 “지금까지 현존하여 왔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진술을 제대로 읽어보면 왜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여전히 부르주아 계급의 사병이 되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진술에 바로 이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 장인과 직인, 즉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서로 끊임없이 대립했으며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계속 이어지는 투쟁을 전개하여 왔다”라고 계급투쟁의 좀 더 구체적인 양상을 기술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 계급투쟁은 전체 사회의 혁명적 개조로 끝나거나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하는 것으로 종결되어 왔다”라는 말로 계급투쟁의 최종 결과를 진술한다.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명제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말하는 계급투쟁이 억압받는 자들이 주도하는 계급투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물론 노동쟁의와 같이 자본가들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이 일으키는 투쟁이 계급투쟁의 한 면모이기는 하다. 이런 쟁의는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계급투쟁이다. 노동자들의 태업, 파업과 같은 작은 규모의 투쟁을 비롯하여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이나 마오쩌뚱이 이끈 중국의 대장정과 같은 큰 투쟁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더 압도적으로 그리고 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급투쟁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대하여 벌이는 “은밀한” 계급투쟁이다. 이 은밀한 계급투쟁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의 작업을 보완하는 작업을 하였던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나 이를 더 정교하게 가다듬은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그람시나 알튀세르는 궁극적으로 마르크스주의 혁명을 꿈꾸고 있었지만 그들의 작업은 왜 자본가 계급이 계속하여 노동계급을 지배할 수 있는 지, 그리고 노동계급이 왜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는 지를 규명하려고도 하였다. 그람시는 노동자와 농민 등 사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본가 계급이 지배하는 질서에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순응하도록 사회의 가치체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한다. 그람시는 이런 가치체계를 헤게모니라고 한다. 그람시의 이론을 더 가다듬은 루이 알튀세르는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이유는 학교를 비롯해 사회의 지배적 가치체계를 교육시키는 여러 국가 기구가 개인들을 끊임없이 자본주의 체제에 적절한 사회구성원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인 학교는 노동자가 될 사람들은 성실한 노동자가 되도록, 관리자가 될 사람들은 성실한 관리자가 되도록 끊임없이 교육하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작용은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정당, 교회 등 사회의 모든 조직과 기구에서 이루어진다고 알튀세르는 설명한다.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계급투쟁이 거의 항상 승리하는 것은 이런 은밀한 계급투쟁이 조직적으로 사회의 전 범위에 걸쳐 끊임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가 계급이 주도하는 은밀한 계급투쟁을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공공연한 계급투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자본가 계급이 주도하는 사회의 가치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런 자본가 계급을 노동자들이 타파해야 노동자들의 이익이 실현될 수 있음을 노동자들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노동자들의 자본가 계급에 대한 적대감이 우선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에 의해 착취당하면서 억압받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자본가 계급에 대해 적대감을 갖지 않는다면 그들은 계속하여 그들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자본가 계급의 용병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적대감에 근거한 노동자 농민 등 억압받는 자들의 집단적 연대의 필요성을 마르크스는 그의 다른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2월 18일에서 설명한 바 있다. 마르크스는 이 저서에서 집단적 연대의 필요성을 프랑스의 농민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마르크스가 예로 드는 19세기의 프랑스 농민은 다른 지역과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의 농민, 노동자, 도시 빈민, 등 억압받는 모든 집단으로 바꾸어 이해해도 된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2월 18일에서 어떤 집단이 계급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이들의 경제적 조건이 다른 계급들과 적대적으로 구분될 때이다. 19세기 당시의 프랑스 농민들은 지주들을 비롯한 자본가 계급에게 억압 받으면서 수탈당하고 있었다. 이 점에서 농민들은 자본가 계급의 이익과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으며 이런 객관적 조건에 의해 농민들은 일단 자본가 계급과 구분되는 농민 계급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런 객관적 조건만으로는 뿔뿔이 흩어져 가족 단위로만 사회경제적 삶을 영위하는 농민들을 제대로 된 계급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농민들 스스로가 계급의식이 있어야 그들은 계급이 된다. 이들 농민들이 계급이 되려면 억압하는 자들에 대한 적대감에 근거하여 그들 사이에 연대감이 형성되어 그들의 이익을 그들 자신이 직접 주장하고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연대의식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두 번째 계급 형성 조건인 주관적 조건이다. 마르크스는 농민들이 제대로 된 계급이 될 수 있으려면 이들이 집단적 연대를 통하여 그들의 계급적 이익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세기 당시의 프랑스의 농민들은 경제 사회적 처지로 본다면 계급이 될 수 있는 1차적인 객관적 조건을 갖추었지만 이들은 2차적인 주관적 조건으로서의 계급의식에 근거한 집단적인 연대를 이루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이들 자신들의 이름으로 그들의 이익을 구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계급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계급 형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설명은 설사 어떤 집단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억압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들이 억압받는다는 의식도 없고 또 그 억압을 이겨내기 위한 집단적 연대가 없으면 계급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급의식이 없는 피지배 계급은 지배계급이 주도하는 계급투쟁에 지속적으로 농락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논점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공산당선언󰡕의 명제에 나오는 계급투쟁을 자본가가 주도하는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하는 계급투쟁으로 구분하지 않고 단지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하는 계급투쟁이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진술로 읽는다면 이는 현존하는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이 명제 자체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은 미약하며 끊임없이 자본가 계급이 주도하는 계급투쟁에 함몰되어 있다. 공산당선언을 제대로 읽고 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 선언을 통하여 꿈꾸었던 공산주의 혁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당장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승리하는 계급투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투쟁 자체가 항상 존재함을 그리고 대부분 노동자들이 패배하는 계급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음을 의식하고 확인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계급의식이 현재는 대부분의 노동자나 농민들 사이에는 갖추어지지 않았다. 정상적인 노동조합 조직률이 현재의 한국에서 5% 정도밖에 안된다거나 투쟁적인 농민회 소속 농민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공산당선언이 쓰인지 160년이 더 지나고 있지만 현재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머리로 생각해보면 상황이 비관적이지만 인간의 의지를 믿기 때문에 나는 미래를 낙관한다”라는 그람시의 말을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 혁명의 가능성이 없다 하더라고 우리는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을 필요가 있다. 미래의 혁명을 위하여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들이 현재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계급투쟁의 현장에 있으며 이들이 주도하는 계급투쟁이 생길 수 있으려면 이들이 자본가 계급에 대한 적대적 의식을 만들어내고 이를 토대로 연대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공산당선언의 마지막에 있는 노동자들의 연대는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을 다시 읽으며 나는 미래에 있을 노동계급의 혁명을 꿈꾼다.  공산당선언이 말하듯이 역사의 종착점은 계급이 소멸되는 평등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민교협 홈페이지와 ‘프레스바이플’에 공동으로 연재됩니다.
프레스바이플 기사 바로 보기>
> http://www.pressbyple.com/news/articleView.html?idxno=8374 





목록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번호 제목 저자 날짜 조회
20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배동인(전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2014.07.04. 2413
19   결기로 기록한 유신의 역사... 한홍구의 <유신> 김귀옥(한성대학교) 2014.02.04. 2418
18   고 안병욱 교수님의 마지막 책 '인생사전' 배동인(전 강원대) 2013.12.28. 2065
17   신승철의『녹색은 적색의 미래다』 양해림(충남대학교) 2013.10.16. 2067
16   “새로운 지식”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질 들뢰즈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장시기(동국대학교) 2013.08.28. 3863
15   죽음의 형식과 죽음의 장소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 : <칼의 노래> -2 김규종(경북대학교) 2013.03.21. 2514
14   죽음의 형식과 죽음의 장소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 : <칼의 노래> -1 김규종(경북대학교) 2013.03.20. 1990
13   소련,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세계혁명 -2 오세철(연세대학교) 2013.02.21. 1964
12   소련,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세계혁명 -1 오세철(연세대학교) 2013.02.20. 1866
11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 「장미의 이름」 -2 이강서(전남대학교) 2013.01.10. 2596
10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 「장미의 이름」 -1 이강서(전남대학교) 2013.01.09. 2454
9   떨치기 어려운 『금각사』의 망령 조돈문(가톨릭대학교) 2012.12.26. 2300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고부응(중앙대학교) 2012.11.21. 2244
7   회복되어야 할 영적 가치 유성호(한양대학교) 2012.11.06. 2397
6   종의 기원 장임원(전 중앙대학교 교수) 2012.10.30. 2309



1 /2 /

 
(151-832)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1632-2, 2층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로 594-1, 2층) / TEL : 02)885-3680
FAX : 02)6918-6882 / E-Mail : mingyo@chol.com / 후원계좌: KEB하나은행 630-005221-265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