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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복되어야 할 영적 가치
저자 유성호(한양대학교)


추천 도서 목록

 * 막스 피카르트, 『우리 안의 히틀러』, 김희상 역, 우물이있는집, 2005.

 

 

 

회복되어야 할 영적 가치
막스 피카르트의 『우리 안의 히틀러』

 

 

유성호(한양대학교 교수)

 

 

 


  1.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 1888-1965)는 국내에도 이미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그의 작가적 기조는, 세속화와 대중 독재의 징후가 점증되어가는 근대 자본주의 아래서 신(神)과 인간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데 놓여 있다. 특히 그에게 커다란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침묵의 세계(Die Welt des Schweigens)󰡕는, ‘침묵’이야말로 신과 가장 가까운 형상이며, ‘침묵’의 밑바닥까지 건드리는 철저한 묵상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영적 실천 행위임을 보여준 명저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안에는 실로 다양한 테마들이 ‘침묵’이라는 렌즈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데 그것은 언어, 자아, 사물, 역사, 사랑, 자연, 시, 신앙 등에 폭 넓게 걸쳐 있다. 이처럼 피카르트는 포괄적이면서도 섬세하게 ‘침묵’이라는 현상(행위)의 넓은 영역을 철학적이고 영적으로 우리에게 해석하여 들려준 바 있다.


  그 피카르트가 새로운(그러나 논리적으로는 이전과 연장선상에 있는) 책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일차적으로 이 책은 독일 역사의 커다란 환부일 수밖에 없는 나치스 시대에 대한 반성적 시선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치스 시대가 가진 맹목의 폭력성과 불모성을, 현대 사회의 영적 고갈 현상으로 유추하여 해석하고 있는 일종의 문명 비평적 저작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작가는 우리 시대에 진정으로 회복되어야 할 영적 가치가 어떤 것인가 하는 영적 지남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복합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책이 바로 󰡔우리 안의 히틀러(Hitler in uns selbest)󰡕(김희상 역, 우물이 있는 집)이다.

 


  2.

  피카르트는 이 책에서 현대인의 영적, 정신적 상황을 ‘맥락 없음(Zusammenhanglosigkeit)’이라는 독특한 이디엄으로 표현한다. 그에 의하면, ‘순간’과 ‘물질’을 좇는 현대인의 내면은 ‘혼란’ 그 자체이다. “일체의 연관을 상실한, 혼란스런 내면을 가진 현대인은 아무 맥락이 없는 외부의 혼돈과 부딪히며 살아”(20쪽)갈 뿐인 것이다. 그 아무런 맥락이 없는 내면의 카오스 속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적인 ‘무(無)’의 상태가 바로 ‘우리 안의 히틀러’이다. 왜냐하면 나치스의 히틀러는 “불연속성,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맥락 없음으로 인해”(24쪽) 우리에게 각인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피카르트는 현대인의 내면 속에 이미 그런 히틀러가 존재한다고 갈파하고 있는데, 현대인은 신으로부터 도망하였으며, 순간만을 좇으며, 일체의 내적 연속성을 잃어버렸으며, 타자들과의 연관을 모두 상실한 채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히틀러같이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총체적인 불연속성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것이 맥락을 잃어버린 이런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비교를 하는 데 익숙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그저 다른 것과 똑같은 별 볼일 없는 존재다. 매순간 모든 것이 변화하는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의 하찮은 놈이 별 차이 없는 다른 놈 앞에 서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위계질서가 분명한 세상이라면 무가치한 히틀러는 저절로 무(無)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렸을 것이다.(24-25쪽)

 

  “총체적인 불연속성의 세계” 혹은 “모든 것이 맥락을 잃어버린” 세계에서는, 자신을 향한 고함만 지를 뿐 타자와의 일체의 연관성을 상실한 히틀러(A. Hitler)는 같은 인물이 광기와 무지와 폭력성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것은 ‘진리’가 지속적이며 사람과 사물을 끌어 모으는 것에 철저하게 대비되는 속성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진리’는 맥락과 연속성을 가진 세계를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히틀러로 표상되는 ‘맥락 없음’의 세계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욕망의 휘파람일 뿐이다. 따라서 “나치스란 완벽할 정도로 내면의 맥락이 없는 상태의 인간이다. 나치스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순간에서 순간으로, 아무것도 아닌 삶에서 어떤 것일 수도 없는 삶을 이어갈 뿐이다. 나치스가 하는 일이라고는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것뿐이다.”(32쪽)라는 작가의 발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막스 피카르트 저, 김희상 역, 우물이있는집, 2005.

 


  이러한 맥락 없는 불연속성의 세계를 동분서주하면서 살아가는 인간형은, 기억을 상실한 인간, 순간에 사로잡힌 인간, 어우러짐이 없는 인간, 발전이 없는 인간, 늘 새롭게 시작만 하는 인간, 잔혹한 인간 등으로 표상된다. 그들은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인지를 모르는 인간, 그 내면은 온통 뒤죽박죽이어서 전혀 맥락을 모르는 인간”(40쪽)이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의 연속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늘 단속적으로 자기 존재를 망각하고 방기하고 결국에는 망가뜨리고 만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작가는 그 까닭을 “내일이면 다시 새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호전적이어서가 아니다. 단지 어제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전쟁을 일으켰던 자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42쪽)라고 꼬집는다. 역사 망각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 있는 한국의 주류 사회에도 적용될 법한 서늘한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그들은 망각과 아집 속에 빠져 있기도 하지만, 조급해하고 심지어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을 작가는 ‘비기독교적’인 형상으로 묘사한다.

 

  나치스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일반적인 특징은, 무슨 일이든 당장 그 즉석에서 결정되고 해결되어야 한다는 조급함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세상의 사물들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는다. 늘 시간이 없다며 조급해한다. 하려는 일이 무르익어 발전할 기회를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점차 익어진 일이 절로 결단을 내리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시간을 박탈한다는 것, 발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비기독교적인 행태의 전형이 아닐까.(51쪽)

 

  “무슨 일이든 당장 그 즉석에서 결정되고 해결되어야 한다는 조급함”은 “시간을 박탈한다는 것, 발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신의 역사를 기다려야만 하는 ‘남은 자(The Remnants)’의 소명에 비추어볼 때 맥락 일탈적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에게 내적인 연속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54쪽)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연속성의 결핍 양상을 ‘라디오’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가령 “라디오가 하는 일은 아무런 맥락도 없이 모든 것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뿐”(55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짜 연속성만을 갖는 이 세계는 새로운 인종이 기계를 가지고 생산한 세상일 뿐이다. 반세기도 훨씬 전에 씌어진 저작이어서 현대인의 내적 연속성의 결핍을 ‘라디오’로 비유코자 했으나, 피카르트가 다시 태어나 요즘 글을 썼다면 아마도 ‘인터넷’으로 비유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한 세계에서 “사람들은 잊을 겨를도 없이 삼켜대기만 했다. 카오스에서 잊혀지는 것은 없었다. 최악의 범죄를 삼키기에 바빴다.”(77쪽)는 것이 작가의 진단이다. 이처럼 우리 안에 있는 히틀러의 얼굴은 “뻔뻔한 무(無)”(84쪽)일 뿐이다. 이러한 영적 불모의 형상을 두고 위대한 시인 횔덜린(F. Hölderlin)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는데, 횔덜린을 인용하고 있는 작가의 혜안이 미덥다.

 

  이 어리석은 자들은 결코 뉘우치지 않으리라,
직접 충격을 받아보기 전에는.
이들은 결코 뉘우치지 못하리라,
직접 두 눈으로 자신의 부패함을 보기 전에는!
― 「구제불능의 인간들을 위한 기도」 중에서

 

“어리석은 자들”의 세계를 두고 작가는 “나치스에게 진정한 공동체란 없었다. 공동체라는 무늬만 흉내냈을 따름이다. 이는 사회를 풍자하기 위한 가면극도 아니다. 유머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사람들은 가면극이나 벌일 여유가 없다. 나치스의 ‘공동체’는 공장의 실험실에서 배달되는 것이다. 공동체가 벽돌을 찍어내듯 만들어진다.”(129쪽)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거니와, 그처럼 맥락 없는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는 없게 되고, 사람들은 독백을 할 뿐이다. 그래서 타자의 존재는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그것은 대화적 소통을 거부한 사악하고 비인간적인 형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의 행동과 그 원칙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히틀러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입장과 행동에 관해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그의 행동 배경을 짐작하고 판단을 내리는 일을 할 수 없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변덕을 부림으로써 사람들의 경험과 판단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이게 히틀러의 새로운 방법이었다. 이 얼마나 사악한 짓인가.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짓이었다.(242쪽)

 

  “히틀러의 새로운 방법”은 그야말로 “고대 사회와 기독교가 함께 제시했던 인간상”을 무너뜨리면서 그리고 휴머니즘의 불모성을 온몸으로 증언하면서 관철된다. 그를 통해 “고대와 기독교의 인간상은 스러져 깨진 조각상처럼 산산조각이 났”(173쪽)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추구하고 실현한 “국가사회주의는 그 어떤 역사의 연속성도 가지고 있지 않”(229쪽)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속적 휴머니즘은 인간을 외부로부터의, 그리고 내면으로부터의 공격을 막아주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 예컨대 전쟁이라는 참혹함은 휴머니즘을 산산이 짓밟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내면의 성숙과 외적 조건이 조화를 이룰 때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것은 ‘사랑’에 바탕을 둔 영적 성숙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내면의 진정한 연속성을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한 인간의 과거를, 그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하나의 내적인 통일로 결집시켜준다.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사랑할 때, 과거를 사랑의 따뜻함으로 품어 안을 때, 인간은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고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서, 사랑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연속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신이 단순히 연속적인 것을 넘어 진정으로 영원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신은 모든 사물과 인간을 가장 위대한 사랑으로 품어 안기 때문이다.(67쪽)

 

  “내면의 진정한 연속성을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 엄숙한 선언은, “사랑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연속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위대한 진리를 전해준다. 그러한 사랑을 신앙 속에서 가지고 있는 온전한 개인들을 작가는 호명한다. “이 온전한 개인들은 해체와 혼란을 겪고 있는 인간들 사이에서 올바로 쓰임을 받지 못하고 버려져 있다.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보물처럼, 신에 의해 발굴된 보석처럼 고즈넉한 빛만 발하고 있다.”(266쪽)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구원은 기독교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한 현재성을 갖는 기독교의 호소력은 직접 와 닿는다. 전쟁이라는 참혹함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이다. 오직 신만이 인간의 존재를 확실하게 지켜낸다.”(296쪽)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 같은 기독교적 치유의 방법이 피카르트가 종국에 다다른 영적 회복의 기획이라 할 것이다.

 


  3.

  『우리 안의 히틀러』는, 역사적으로는 히틀러를 정점으로 하는 나치스에 대한 비판 기획의 언어로 짜여져 있고, 종교적으로는 현대인의 잃어버린 영성을 회복하라는 주문으로도 읽힌다. 이 책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1년 뒤에 나온 책으로, 심리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나치스라는 현상을 통해 나타난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분석한 결과이다. 그 본성을 향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연쇄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가령 우리는 타인의 실책에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잦은 폭력성에는 얼마나 둔감한가? 실제로 나치스는 고전 음악을 들으면서 태연히 유태인들을 죽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인간의 모순은 어디가 끝인가? 결국 무슨 일이 닥칠지 걱정하는 사람도 없고, 그저 모든 것이 일체의 맥락을 잃고 뒤죽박죽 뒤섞여 있을 따름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탐욕에 미친 세상과 당당히 맞서 신의 사랑을 따른”(「역자 서문」) 피카르트의 생각이, 우리의 내적 연속성의 회복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시대의 영적 치유를 위하여 설득력 있는 대안적 사유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글은 민교협 홈페이지와 ‘프레스바이플’에 공동으로 연재됩니다.
프레스바이플 기사 바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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