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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 「장미의 이름」 -2
저자 이강서(전남대학교)


 추천 도서 목록

 *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 Distribooks Inc, 2003.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장미의 이름」 -2 

 

 

이강서 (전남대학교 교수)

 

 


                  

6. 문제의 인간 현상: 웃음


  연쇄 살인 사건은 『페리 포이에티케스』 제2권 가장 자리에 발라진 독약에서 비롯되었다. 책의 역사는 금지의 역사이기도 했다. 종교적, 정치적, 도덕적 이유로 수없이 많은 책이 금지되고 불태워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ium)과 ‘삭제 장절 일람표’(Index expurgatorius)가 존재했다. 『장미의 이름』에서 금서는 목록에서 ‘아프리카의 끝’(finis Africa)이라는 암호 표시로 구별된다. 그러나 금기와 금지는 깨어지기 위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희극을 다룬 『페레 포이티케스』 제2권의 독서를 금지하면 금지할수록 그 책을 몰래 읽고 낄낄대다가 손가락 끝과 혀가 새까맣게 되어서 죽어나가는 수도사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왜 웃음이 문제인가. 고대철학사에는 ‘웃는 철학자’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와 ‘우는 철학자’로 불린 이가 나란히 등장한다. 그러나 ‘울음’에 비해 철학자들의 더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단연 ‘웃음’이다. 인간이라는 ‘종’(種)을 다른 동물의 종과 구별해 주는 특징, 논리학에서 말하는 종차(種差, differentia specifica)로 웃음을 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동물의 종도 울기는 하지만 웃는 것 같지는 않다고 보는 모양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중심주의’라는 편견이 작동했을 수 있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소설 제목이 있는데, 과연 뻐꾸기는 뻐꾹뻐꾹 우는 것일까, 아니면 뻐꾹뻐꾹 웃는 것일까. 시인 정지용은 「향수」에서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고 했지만 혹시 금빛 웃음을 웃는 것은 아닐까? 드물게 원숭이나 개의 웃음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울음에 비해서는 웃음이 더욱 철학자의 관심의 대상이다. 틀림없이 에코는 베르그송(H. Bergson)의 저서 『웃음』(Le Rire)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616&docId=570201&imageNo=5&categoryId=1616

 


  울음에 비해 웃음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방긋, 벙긋, 방실, 빵끗, 생긋, 싱글싱글, 생글생글, 싱글벙글, 실실, 빙그레, 헤벌쭉, 히죽히죽, 히쭉, 까르르, 깔깔, 킬킬, 낄낄, 냉소(冷笑), 조소(嘲笑), 홍소(哄笑, 입을 크게 벌리고 매우 떠들썩하게 웃음, 轟笑), 미소(媚笑), 미소(微笑), 고소(苦笑), 비소(鼻笑, 코웃음), 비소(誹笑, 비웃음), 비소(鄙笑, 얕보고 비웃음), 실소(失笑,픽 웃는 웃음), 박장대소(拍掌大笑), 파안대소(破顔大笑), 홍연대소(哄然大笑, 큰 소리로 껄껄 웃음), 가가대소(呵呵大笑), 코웃음, 비웃음, 눈웃음, 가벼운 웃음, 썩소, 귀가 입에 닿도록 웃는 웃음, 만면의 미소, 득의의 웃음, 볼우물 가득 고이는 웃음, 고졸한 웃음, 사유반가상의 웃음, 가랑잎 굴러가는 것을 보고 웃는 웃음, 깔깔대는 웃음, 염화시중의 미소, 새악시의 부끄러워하는 웃음, 실실거리는 웃음, 헤살거리는 웃음, 아니꼬운 웃음, 젠체하는 웃음, 씁쓸한 웃음, 쓰디쓴 웃음, 억지 웃음, 거짓 웃음, 상냥한 웃음, 다정한 웃음, 잔잔한 웃음, 환한 웃음, 밝은 웃음, 능글맞은 웃음, 징그러운 웃음, 빈정대는 웃음. 많기도 하다.


  절대로 웃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웃음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경우가 있다. 사르디니아 산 식물이라는 뜻의 단어로 희랍어 사르도니오스(Sardonios, 영어 sardonian)가 있다. 이 식물을 먹으면 경련성 웃음이 나와서 웃음을 그칠 수 없어 죽게 된다고 여겼다고 한다. 깊은 슬픔에 잠긴 상갓집 유족들 앞에서 사소한 것으로부터 촉발되어 웃음이 터진다면? 군대에서 잔뜩 성이 난 상관으로부터 기합을 받던 중에 웃음 폭탄이 터진다면? 생각하기조차 싫은 상황이다. 그 밤은 말할 수 없이 길고 고단한 밤이 될 것이다. 웃음이 전염병처럼 번지는 경우란 한결같이 절대로 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경건’을 특징으로 한 종교적 영역이다. 경험해 본 이는 안다. 웃어서는 안 되는 상황일수록 불쑥불쑥 웃음이 터지고, 그런 경우 웃음을 참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이 큰 고통이 된다. 중세 수도원의 엄숙주의야말로 웃음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했을 것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웃음 바이러스로부터 수도원을 지켜내려는 첫째가는 수문장은 장님인 호르헤 수도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웃지 않았다. 호르헤는 베네딕트회 회칙 제4장에 나오는 표현을 철석같이 고집한다. “공허한 말, 웃음을 유발하는 언사를 입에 올리지 말지어다.”(Verba vana aut risui apta non loqui) 웃음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크기 때문에 애초에 발도 못 붙이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7. 중세의 뜨거운 문제: 보편논쟁


  중세의 거의 대부분 철학자들이 매달려 씨름했던 두 가지 문제는 ‘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려는 시도’와 ‘보편논쟁’이다. 보편논쟁이란 ‘보편자’가 실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둘러싼 논쟁으로서 중세 철학자들의 관심은 바로 이 논쟁에 집중되어 있었다. 먼저 이 논쟁의 역사적 연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서 플로티노스의 제자 포르피리오스(Porphyrios, 233-304)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 가운데 하나인 『범주론』에 대한 해설을 시도했다. 이 포르피리오스의 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입문』을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가 라틴어로 번역하고 여기에 주석을 붙여서 출판했다. 보편논쟁의 도화선이 된 이 책에서 보에티우스는 포르피리오스가 논의하지 않겠다고 미루어 둔 문제들을 다시 문제 삼았다. 유(類)와 종(種)이 그 자체로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생각 속에만 있는가? 그것은 감각적 사물 속에 있는가, 감각적 사물과는 별도의 것인가? 그 당시에는 유와 종을 합해서 보편(universalia)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했기 때문에 이 물음들과 관련된 다툼을 ‘보편논쟁’이라고 부른다. 보에티우스는 고대의 철학자들을 끌어들이게 되었고, 결국 보편자가 실재하는지의 여부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까지 소급시켰다. 그리하여 보편논쟁에 가담한 중세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에서 문제의 발단을 찾게 되었다.

 

 

  보편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우선 두 진영이 대립한다. 보편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이 참된 존재로서 개별적인 특수 사물보다 앞선다는 주장을, 보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보편 실재론’, 줄여서 ‘실재론’(實在論, realism)이라고 부른다. 이 입장은 ‘보편이 개체에 선행한다’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실재론의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은 안셀무스(Anselmus)이며 샹포의 기욤므(Guillaume de Champeaux)에 의해 극단화된다. 기욤므는 일반적인 유개념(類槪念)만이 실재하는 본체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마치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라고 말하는 경우에 ‘인간다움’만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소크라테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보편적 실체가 먼저 있고 난 다음에 어떤 특수한 개체에 부차적이요 우연히 낙인 찍힌 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실체로서의 ‘인간다움’은 단 하나의 구체적이요 개별적인 인간마저도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존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실체로서의 ‘희다는 것’(whiteness)은 흰 색을 띈 어떤 하나의 사물(white thing)도 없을지라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본다.   

 


  이와는 달리 개별적 사물이 존재할 뿐 보편이란 허황한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보편 유명론’ 혹은 ‘보편 명목론’, 줄여서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 혹은 ‘명목론’(名目論)이라고 부른다. 이 입장은 ‘보편은 개체 다음에 온다’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유명론을 대표하는 인물은 로스켈리누스(Roscelinus)이다. 현실은 단순한 개별체들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 로스켈리누스는 보편자란 인간이 안출해낸 이름(nomina)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보편자로서의 ‘희다는 것’, 곧 ‘흰 색’이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무의미하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흰 색을 띈 구체적인 사물들, 곧 흰 꽃, 흰 종이 등 뿐이다. 유명론자들은 이런 의미로 보편을 ‘바람 소리’(flatus vocis)라고 부른다. 보편논쟁을 격렬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스콜라 철학의 기반을 뿌리채 뒤흔들고 급기야 중세의 종언을 재촉한 유명론자는 오캄(Occam, 영어 표기 William of Okham )이다. 그는 보편자의 존재를 철저하게 부인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보다 적은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보다 많은 것으로 하는 것은 헛되다”고 말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보편자를 동원해서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은 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실체는 필요 없이 증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보편자를 철저하게 거부한다는 선언이다. 이런 내용의 주장을 오늘날 우리는 ‘오캄의 면도날’이라고 부른다. 면도날을 써서 불필요한 실체는 잘라내야 하는데 보편이야말로 그렇게 잘라 내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영화 「콘택트」에서도 외계인의 존재를 둘러싸고 신학자와 과학자가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오캄의 면도날’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또한 이렇게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입장을 조화시키고자 하는 제3의 견해를 ‘보편 개념론’, 줄여서 ‘개념론’(槪念論, conceptualism)이라고 부른다. 이 입장은 ‘보편은 개체 안에 있다’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개념론을 대표하는 인물은 아벨라르두스(P. Abelardus)이다. 그는 유명론자인 로스켈리누스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샹포의 기욤므로부터도 배웠다. 그의 학문적 배경이 벌써 제3의 길을 걷게 될 조건을 갖춘 셈이다. 개념론에 의하면 우리의 지성은 개별적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성질을 추상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보편이란 개별적 사물 자체가 아니라 추상 작용의 결과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편이 단순히 이름이나 음성은 아니며, 오히려 개별적 사물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 개념 속에 반영된 것이다. 요컨대 보편이란 이미 신의 정신 속에 사물의 모형으로 있는 것을 인간이 추상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보편의 문제가 중세의 심각한 논쟁으로 발전되어 많은 철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까닭은 무엇일까? 보편의 문제는 ‘교회의 보편성’, ‘신의 보편성’, ‘원죄의 보편성’, ‘구원의 보편성’이라는 기독교 교리와 관련되어 있다. 중세 사회를 지배했던 것은 카톨릭 교회였다. ‘카톨릭’(catholic)이란 말은 ‘보편’ 혹은 ‘보편적’이라는 의미의 희랍어 ‘카톨루’(katholou) 혹은 ‘카톨리코스’(katholikos)에서 왔다. 즉 카톨릭 교회란 보편 교회를 뜻한다. 교회는 단순히 개별 신자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보편으로서 개별 신자들에 선행하는 권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일체를 이룬다는 ‘삼위일체설’(theory of Holy Trinity)도 삼위를 ‘하나의 신’으로 만드는 공통의 본성, 즉 보편성의 실재를 전제한다. 원죄(原罪, peccatum originale)도 각 개인이 지은 죄가 아니라 인류라는 보편이 지은 죄로 해석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인류를 구원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만일 유명론의 주장과 같이 보편이 개별적이며 유한한 사물 다음에 오는 것이요 단순한 말에 불과한 것이라면, 신이라는 존재는 터무니없는 개념에 의지하는 격이 되어 스스로의 존재를 위태롭게 만들 우려가 있다. 삼위일체설 역시 그 존립 기반을 상실하여 기독교는 ‘유일신교’가 아니라 ‘삼신교’가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인류는 아담 이래로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라는 원죄 사상 역시 설 자리가 없어지고, 참된 존재는 개별적 인간이므로 각자는 자신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죄인이라는 주장이 대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 카톨릭 교회는 신, 교회, 원죄, 구원의 보편성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실재론의 입장을 정통으로 인정하고, 유명론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징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는 1092년 스와송(Soissons) 종교회의에서 유명론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모든 논의를 금지시키기에 이른다.


  카톨릭 교회가 지배한 중세의 긴 세월 동안 실재론이 우세하였다. 중세의 말기에 이르러 유명론이 활발해져 실재론과 자웅을 겨루다가 급기야 오히려 유명론이 실재론보다 우세해지게 되었다. 실재론과 유명론의 우열이 역전된 시대는 새로운 시대요, 우리는 이 시대를 근대라 부른다. 실재론과 유명론의 힘겨루기의 추이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이 하필 ‘윌리엄’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배스커빌의 윌리엄’은 유명론을 대표하는 ‘오캄의 윌리엄’과 겹친다. 작품 제목이 ‘보편논쟁’이라는 배경을 암시한다는 것을 맨 마지막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 뿐, 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 덧없는 이름 뿐.”(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 이 글은 민교협 홈페이지와 ‘프레스바이플’에 공동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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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ressbypl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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