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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 「장미의 이름」 -1
저자 이강서(전남대학교)


추천 도서 목록

 *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 Distribooks Inc, 2003.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 「장미의 이름」 -1

 

 

이강서 (전남대학교 교수)

 

 

 

  「문제적 인간 연산」이라는 제목의 연극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조선 중기 연산군은 여러 각도로 분석해볼 만한 흥미롭고도 복잡한 인간임에 틀림없다. 최근의 영화 「왕의 남자」를 비롯해서 수많은 영화, 연극, 소설이 그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실 연산만 문제적 인간인 것이 아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은 모두 문제다. 그러니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연산’을 미지수 X로 놓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각자를 이 X에 대입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에 대해 ‘문제 풀이’(problem solving)라는 대답을 내놓은 철학자가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맥빠진 답변 같기도 하지만 충분히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인간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문제요, 그런 인간이 부닥치게 되는 것은 죄다 ‘문제 상황’(problem situation)이다. 문제 상황에 처한 문제적 인간이 하나씩하나씩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인간의 삶 아니겠는가. ‘문제’를 뜻하는 영어 낱말 프로블렘(problem)은 라틴어 프로블레마(problema)에서 왔다. 또 라틴어 프로블레마는 다시금 희랍어 동사 프로발레인(proballein)과 연관된다. ‘프로’는 ‘앞’을 뜻하고, ‘블레마’는 ‘던져진 것’ 혹은 ‘던져져 있는 것’을 나타내고, ‘발레인’은 ‘던지다’이다. 그러니 ‘문제’란 ‘내 앞에 던져져 있는 것’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의 애초 제목은 「어느 수도원의 살인 이야기」였다고 한다. 주인공인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배스커빌의 윌리엄은 멜크 수도원 출신의 아드소와 함께 북부 이탈리아 어느 베네딕트 수도원의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한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야말로 ‘문제 풀이’에 제격일 것이다. 이 소설은 인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기호학적 장치로 버무려 놓았다. '언어의 천재‘로 불리는 작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 )의 이 작품에서 우리는 희랍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프로방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등이 혼재하는 언어전람회, 바벨탑을 들여다본다.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해치우고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덕분에 미로(迷路, 迷宮, labyrinthos)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수도원 장서관의 구조는 미로이다. 들어갔다가 자칫 출구를 찾지 못하는 수가 있다. 어디 장서관 뿐이겠는가. 굽이굽이 위험천만한 인간의 삶을 나타내는 데에 ‘미로’보다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다. 소설 『장미의 이름』 자체도 하나의 미로이다.     


  
1. 문제적 인간: 움베르토 에코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인간, 이른바 '유니버설 맨' 혹은 '르네상스 인간'의 대표 격으로 흔히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Vinci)를 꼽는다. 그는 화가이고 건축가요 조각가였고, 발명가요 기술자요 과학자였으며 특히 뛰어난 해부학자였고 사상가이기도 했다. 도시 설계, 기계 설계, 심지어 무대 의상 전문가이기도 했다. 철학자 라이프니쯔(Gottfried Wilhelm von Leibniz)는 어떤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수학자요 법률가이며, 신학자요 역사가였다. 지리학자요 언어학자였고, 물리학, 생물학, 중국학에서도 가볍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 이 ‘단자론’(monadology)의 철학자는 이진법을 창안해 내서 오늘날 컴퓨터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는가 하면, 뉴톤과 거의 동시에 미분ㆍ적분을 제안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물론 현대로 올수록 다빈치-라이프니쯔 식 만능 인간은 멸종 위기를 겪는 희귀종이 되고 만다. 이런 정황에서 출현한 움베르토 에코에게서 우리는 다시금 만능 인간의 냄새를 맡게 된다.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철학자, 소설가, (1932년 1월 5일 ~ ), 이탈리아 

 


  에코는 1932년 북부 이탈리아 밀라노 남쪽 작은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토리노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954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다채로운 학문 이력을 보이더니 1971년 이래 볼로냐 대학교 기호학 교수로 자리 잡는다.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이고, 언어의 천재요 컴퓨터 전문가이고, 탁월한 기호학자이고,  소설가요 에세이스트다. 하지만 『논문 작성법』까지는 손대지 말았어야 했다.     

 

 

2. 문제적 시기: 1327년 11월말 어느 일주일


  필요에 의해서 시대를 구분하는 경우에 흔히 두 가지 방식을 취한다. 그 하나는 고대, 중세 및 근ㆍ현대의 셋으로 나누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의 넷으로 나누는 것이다. 후자의 것이 보다 세밀한 방식의 구분이지만 이것은 시간적으로 보아서 나중에 생겨난 것이요, 애초에는 셋으로 나누었다. 우선 낡은 시대(old age)와 새 시대(new age)가 있고, 사람들은 이 두 시대 사이에 중간 시대, 곧 중세(中世, middle age)를 설정했다. 영어로나 한자로나 ‘중세’라는 어휘는 ‘사이에 낀 시대’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는 중세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중세를 ‘암흑시대’(dark age)라고 표현하는 것도 사정은 비슷하다. 암흑시대라는 말은 대체로 새 시대인 근ㆍ현대에 비추어 중세를 극복의 대상으로만 볼 때에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중세는 무려 1000년이라는 긴 시간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오로지 어두운 면, 부정적인 면, 그늘진 면만 있었을 턱이 없다. 당연히 이 시대에도 밝은 면, 긍정적인 면, 빛나는 면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세라는 시대를 편견 없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장미의 이름」의 시대적 배경은 1327년 11월말 어느 일주일이다. 이때는 교황 요한 22세가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겨 가 있던 시기로 역사가들은 이를 가리켜 ‘아비뇽 유수’라고 부른다. 교황청이 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상황이 되자 프랑스 왕과 경쟁 관계에 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자연히 교황청과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한편 13세기 성 프란체스코는 청빈 사상을 중심으로 삼는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창립하고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의 인준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청빈 사상은 재력과 권위를 통해 세속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교황청 및 다른 수도회들에게 껄끄러울 수밖에 없게 된다. 급기야 프란체스코 참사회는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한 수도회의 입장을 정리하여 발표하는데 이를 페루자 헌장이라고 부른다. 페루자 헌장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물건도 소유하지 않았고 그저 일시적으로 사용했을 뿐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할 수도사들 역시 어떤 재물도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다. 교황으로서 황제 임명권까지도 교황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요한 22세는 1323년 회칙을 발표하여 페루자 헌장을 묵살해 버린다. 요한 22세는 청빈을 내세워 교황권에 도전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몇몇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몰았고 이로 인해 이미 교황과 크게 대립하여 파문당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트비히와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이에 연대가 이루어져 황제파를 형성하게 된다. 『장미의 이름』은 이런 교황파와 황제파의 대립이 긴장을 불러오던 시기의 일주일을 그려 보인다.      

 

 

3. 문제적 공간: 수도원 장서관


  가장 중세적 공간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수도원이다. 중세의 수도원은 세상의 거울(speculum mundi)이었다. 수도원은 비단 종교적인 공간으로 그치지 않는다.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익숙한 모토가 말해주듯 수도원의 경제적 의미는 매우 크다. 과거 우리나라의 ‘사하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프란체스코 파, 베네딕투스 파, 도미니쿠스 파, 도나투스 파, 우베르티누스 파 등의 각축을 생각하면 수도원은 중세 종교 정치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수도원 혹은 수도원에 부속된 학교는 교육의 중심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근대 대학과 자연과학이 태동한다. 이렇게 볼 때 수도원은 중세의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중심 구실을 한 공간이다. 웬만한 규모의 수도원이라면 성당, 교육 시설, 집회 시설, 숙소, 욕장, 식량을 생산하는 토지, 가축을 기르는 곳, 대장간, 약초 재배지 등을 두루 갖춰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완결 지향적 구조는 수도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이요 폐쇄적인 성격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수도원의 에토스는 절대 침묵에서 오는 적요(寂寥)와 적막(寂寞)이다. 대부분의 수도원이 외부 세계와 격절된 건축 구조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높은 천정의 회랑을 걸을 때면 스스로의 그림자를 소리나지 않게 밟아야 했다. 유럽의 많은 수도원들은 오늘날 수도원 공간을 피정(避靜, exercitia)의 장소로 시민에게 개방하기도 한다.


  하나의 완결된 작은 세계인 수도원의 중심은 단연 도서관, 장서관이다. 수도사의 일상은 책을 읽고 이런 책을 가꾸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사는 “서책 사이에서, 서책과 함께, 서책을 위해서, 서책으로 사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장미의 이름」 ‘서문’에는 「준주성범(遵主聖範, De Imitatio Christine)」의 작가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 Kempis)의 표현이 나온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 더 널리 알려진 표현은 역시 보르헤스의 것이다. “만일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도서관 같을 것이다.” 중세의 중심 공간은 수도원이고, 수도원의 중심은 도서관이다. 수도원 장서관이 중세의 중심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건축적 면모에 있어서 그러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장서관이 소장하는 책들이 담고 있는 생각에 있어서 그러하다.


  책의 운명이 금서(禁書)와 분서(焚書)의 역사로 점철되듯이, 도서관의 운몀은 화마(火魔)의 엄습과 관계 맺는다. 서양 고대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라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면서 ‘불타는 도서관’이라는 끔찍한 트라우마가 시작되었다. 시저(Caesar)가 전략상 배에 불을 붙였고 그 불이 도서관에 옮겨 붙으면서 사단이 났다. 논리학 교과서에는 이슬람 지도자 오마르가 도서관에 불 지르면서 펼쳤다는 논법이 ‘딜렘마’ 형식의 예로 소개된다. “만일 이 도서관 책들의 내용이 코란의 가르침과 같다면 이 책들은 불필요하다. 만일 이 도서관 책들의 내용이 코란의 가르침과 다르다면 이 책들은 위험하다. 그런데 이 책들의 내용은 코란의 가르침과 같거나 다르거나이다. 그러므로 이 도서관 책들은 불필요하거나 위험하다.” 당연히 이 논법에 이어지는 것은 “따라서 이 책들은 불태워져야 한다”이다. 제1차세계대전 중 벨기에 루벵대학교 도서관을 사이에 두고 적대 관계인 두 진영이 벌인 신경전은 유명한 도서관 역사가 되었다. 

 

 

출처 : 사진 속

 


  가장 최근의 일로는 독일 바이마르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Herzogin Anna Amalia Bibliothek) 화재를 들 수 있다. 이 화재는 2004년 9월2일 20시 25분 4층의 한 전기 코드로부터 시작되어 아름다운 로코코홀에 진열된 주로 17/18세기 가죽 장정 희귀본 5만권과 미술품 35점이 완전 소실되었고, 6만2천권의 책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서관 건물에 불이 난 시점은 근처에 마련한 새 열람실 개실을 앞두고 전면 개보수에 들어가기 불과 몇 주 전이어서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짧은 기간에 전국적으로 1000만 유로의 복구 성금이 모아졌다. 당시 도서관장은 운명의 발화 시각부터 복구가 완료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Michael Knoche, Die Bibliothek brennt, Ein Bericht aus Weimar, Göttingen 2006) 


  도서관 화재가 더욱 비장한 것은 종이가 타서가 아니라 책에 담긴 인간의 사유가 불타 없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원 장서관은 사흘 밤낮을 탄다. 장서관의 책과 함께 중세적 사유도 불길에 휩싸인다. 중세라는 시대는 이제 ‘이름’으로 남고 새 시대가 도래한다.      

 

 

4. 문제적 시간 셈법: 성무일도


  「장미의 이름」에서 시간은 아날로그 시계나 디지털 시계로 잴 수 없다. 중세의 시간은 성무일도(聖務日禱)에 따라 흐른다. 군대에 간 사병의 시간이 일조 점호로 시작해서 취침 점호로 끝나는 것에 비견할 만하다. 군대 용어로 표현해서 사병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한 따까리 해야 끝나는 이치와 같다. 우리가 통상 ‘성무일도’라 부르는 것에는 여러 라틴어 이름이 있다. 우선 오피치움 디비눔(Officium Divinum)이 있다. ‘하느님의 직무’, 곧 ‘성무’(聖務)를 뜻한다. 리투르기아 호라룸(Liturgia Horarum)이라고도 부른다. ‘시간 전례’라는 뜻이다. 뭉뚱그려 보자면 ‘성무일도’란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바치는 교회의 공식 기도이다. 카톨릭 세계에서 현대의 신앙 생활의 기준을 제시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무일도가 교회의 공식 기도로서 신앙심의 원천임을 천명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는 성무일도를 바칠 의무가 있고 평신도들의 경우에도 권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중세의 시간, 『장미의 이름』의 시간은 조과(朝課, Matins), 찬과(讚課, Lauds), 1시과(一時課 Prime), 3시과(三時課, Terce), 6시과(六時課, Sext), 9시과(九時課, None), 만과(晩課, Vespers), 종과(終課, Compline)를 바치는 기도의 연속으로 가늠된다.

 

 

5. 문제의 책: 『페리 포이에티케스』


  수도원 장서관의 허다한 책들 가운데 소설 「장미의 이름」을 관통하는 문제의 책 한 권이 있다. 우리가 흔히 『시학』이라고 부르는 책인데, 이 번역 이름이 과연 적절한지가 벌써 논쟁의 대상이 된다. 서양 책의 역사에서 현대 인류에의 전승 자체가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된 대표적 경우 세 가지는 성서, 플라톤 전집(Corpus Platonicum),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Aristotelicum)이다. 영어 바이블(Bible), 독일어 비벨(Bibel)은 희랍어 비블리온(biblion)에서 왔는데, 이 희랍어 단어는 그저 ‘책’을 뜻한다. 서양 사람들에게 성서는 ‘책’이요, ‘책 중의 책’이다. 근대 이후 각각의 민족국가들은 자신의 언어로 된 성서,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마련하는 일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가운데에서도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되는 책은 매우 복잡한 내력을 지닌다. 이 책의 정확한 희랍어 표현은 『페리 포이에티케스』(Peri poietikes)이다. ‘페리’(peri)는 전치사로서 ‘무엇무엇에 대하여’ 혹은 ‘관하여’를 나타내니 ‘포이에티케에 대하여’ 정도가 되겠다. 희랍어 『포이에티케』(Poietike)에 상응하는 라틴어 표현은 『포에티카』(Poetica), 영어 표현은 『포에틱스』(Poetics), 통용되는 우리말 표현은 『시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적 탐구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그 세 가지란 ‘이론(theoria)적 탐구’( theoretike), ‘실천(praxis)적 탐구’(praktike), ‘제작(poiesis)에 관한 탐구’(poietike)이다. 워낙 ‘포이에시스’는 제작 일반. ‘만든다는 것’, ‘만듦’(making)을 가리키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작에 관한 탐구’로 거론한 두 학문은 ‘수사학’(rhetorike) 와 ‘포이에티케’(poietike)이다. 이렇게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소한 여기 학문 분류에서 만큼은 ‘제작’을 ‘말의 제작’과 ‘글의 제작’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제작 가운데에서도 글과 말의 제작을 각별히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희랍어로 포이에테스(poietes)는 ‘(무엇이 되었든 간에) 만드는 자’를 뜻하는데 영어 poet은 ‘시를 만드는 자’, ‘시인’이 되고, 희랍어 ‘포이에마’(poiema)는‘(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만들어진 것’을 뜻하는데 영어 poem은 ‘시인이 만든 것’, ‘시’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의 복잡한 전승의 역사는 문제를 한층 어렵게 만든다. 7세기에 아라비아에서 태동하여 단시일내에 동부 지중해 지역과 이집트를 석권한 이슬람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이 사람들이 스페인에 진출하자 유럽 사람들이 이슬람에 의해서 아랍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읽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재발견하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아랍인이 아니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럽에 전승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읽게 되는 『페리 포이에티케스』는 모두 26장으로 앞 부분 1-5장은 ‘미메시스’ 개념을 중심으로 한 시론 일반을, 6장에서 22장에 이르는 압도적 분량은 온통 비극을, 끝 부분 23-26장은 서사시를 다룬다. 여기에 주목해서 학자들은 지금의 『페리 포이에티케스』가 온전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수사학』에서 언급한 희극에 대한 논의와 『정치학』에서 언급한 카타르시스에 대한 논의가 통째로 빠져 있다. 그래서 통상 학자들은 중세의 상당한 기간 동안까지도 『페리 포이티케스』 제2권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는데, 에코가 이 전승의 문제에 상상력을 한껏 발휘한 것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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