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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대한 탈근대적 지도자, 넬슨 만델라
저자 장시기(동국대학교)


                     위대한 탈근대적 지도자, 넬슨 만델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인빅터스>

 

                                                                         장시기(동국대)

 

I. 넬슨 만델라와 아프리카너 민족

넬슨 만델라의 죽음 소식을 듣고, 미국의 전형적인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영화배우이자 정치인이며 영화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인빅터스>를 다시 보았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마침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고, 1995년 남아프리카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프링복스' 팀이 우승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 <인빅터스>(2010) 포스터.

그러나 이 영화에는 1652년 네덜란드계 개신교도들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식민지화 정책에 따라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 정착하면서부터 시작된 다양한 인종과 종족들의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남아프리카를 비롯한 아메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인류 전체가 경험한 근대화 과정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위대한 탈근대적 지도자, 넬슨 만델라를 칭송하는 것과 더불어 1652년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정착하면서 네덜란드의 식민지와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보어인에서 아프리카너(Afrikaner) 민족으로 성장한 아프리칸스어(Afrikaans)를 사용하는 남아프리카의 "창백한 백인들"을 칭송한다. 그들의 근대화 과정의 역사는 공교롭게도 우리 한민족의 근대화 과정의 역사와 너무나도 닮았다.

'보어인(Boer)'이라는 말은 농민이라는 말이다. 1952년부터 척박한 남아프리카의 땅을 오늘날의 비옥한 농장으로 개간한 사람들은 이들 보어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지역의 다양한 종족들을 억압하는 동시에 1794년부터 영국의 제국주의 식민지인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제국주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1830년대부터 그들은 남부 웨스턴 케이프와 이스턴 케이프의 해안지역에서 내륙으로 이주하는 '대이주(Great Trek)'를 통하여 새롭게 남아프리카 지역 내륙에 '나탈공화국'을 세웠다가 다시 영국에 빼앗기고 더 북쪽으로 이주하여 '자유공화국'과 '트란스발공화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그곳에 대규모의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됨과 동시에, 다시 영국 제국주의 침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제1차 보어전쟁(1880~81)과 제2차 보어전쟁(1899~1992)이다. 보어전쟁은 전쟁사(史)에서 전근대적인 전쟁에서 근대적인 전쟁으로 변화하는 전환점에 있었던 전쟁이다. 제1차 보어전쟁에서 패배한 영국은 제2차 보어전쟁에서 잔인한 초토화 작전과 2만 명에 가까운 여성과 어린이들을 죽이는 포로수용소의 운영으로 보어인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리고 1910년 한일합방처럼 영국식민지의 남아프리카 연방을 만들었다.

'아프리카너'라는 언어는 영국 제국주의에 저항하면서 생긴 언어이다. 그들은 1652년부터 케이프타운에 장착한 네덜란드계 이주민이라는 '보어인'이라는 언어를 버리고 남아프리카의 백인 원주민이라는 의미의 '아프리카너'라는 새로운 근대적 민족 정체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동일한 남아프리카 지역 내부에 있는 '코사'나 '줄루', 혹은 '바수투'와 같은 흑인 종족과 마찬가지로 남아프리카를 구성하는 하나의 종족이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프리카너 종족이 영국과 대항하면서 영국 제국주의를 그대로 닮아버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1948년 남아프리카 지역 백인들만의 단독선거에서 아프리카너 민족주의를 주창한 국민당이 승리한 이후 영국 제국주의 정책을 그대로 물려받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 인종차별을 합법화하고, 마침내 1961년에는 영연방으로부터 탈퇴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창설하였다. 영국 제국주의에 저항하던 그들의 무기는 이제 그들과 같이 남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인 흑인과 유색인들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런 서구 유럽의 근대성에 매몰된 아프리카너들에게 넬슨 만델라는 너무나도 신기한 존재였다. 1964년의 너무나도 악명이 높은 <국가전복 반역죄 재판>, 최후진술에서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백인 지배에 저항하여 싸웠고, 흑인 지배에 저항하여 싸웠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가지며 더불어 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삶이 지향하고 반드시 달성하고자 하는 이상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필요하다면, 나는 그 이상을 위하여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서구/비서구, 백인/비백인, 자본주의/사회주의, 진보/보수, 가진 자/가지지 못한 자 등의 이분법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백인지배에 저항하는" 동시에 "흑인지배에 저항하는" 넬슨 만델라는 기이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또한 지배/피지배를 사회와 국가 구성의 제1 원칙으로 알고 있는 근대인들에게 젊은 넬슨 만델라가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가지며 더불어 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는 정말로 꿈과 같은 머나먼 이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과 이상이 없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만델라의 최후진술이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하여 남아프리카 전국에 방송된 이후,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의 흑인들뿐만 아니라 민족과 계급과 종족의 근대적 지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남아프리카의 백인 아프리카너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탈근대적 가치의 현실이 되었다. 1990년 그가 27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현실의 세계에 등장한 것은 '아프리카국민회의(ANC)'와 같은 남아프리카 해방운동의 성장과 더불어 아프리카너 지식인들의 근대극복과 백인정권에 대한 저항에 힘입은 바가 크다.

II. 위대한 탈근대적 지도자, 넬슨 만델라

1994년 4월 26일,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루어진 70퍼센트의 흑인과 16퍼센트의 백인 그리고 14퍼센트의 유색인 모든 주민들이 참여하는 최초의 선거에서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이날부터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의 신문들은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위험한 나라로 선포하였다. 이것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정말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위험한 나라인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의 나라들에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위험한 나라인지 모른다. 넬슨 만델라 정부 이후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의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근대 식민지를 경험한 아프리카의 54개국을 문화적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아프리카연합 건설을 준비하기도 하였고, 여전히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 중심의 국제연합(UN)을 넘어서기 위하여 브라질과 중국, 러시아, 인도와 손을 맞잡고 브릭스(BRICS)를 구성하기도 하였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 이후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제적 행보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유럽의 국가들에게 위협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비서구 비유럽 중심의 국제적 행보는 지구촌 시대의 탈근대 세계에서 중국과 브라질을 비롯한 비서구 국가들의 모든 꿈이기도 하다.

근대적인 국제관계에서 탈근대적인 국제관계로 이동하는 지구촌 세계의 정세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개개인들에게 너무 동떨어진 먼 나라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 <인빅터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내부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탈근대적 지도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남아프리카의 다양한 국민 구성원들이 근대적으로 만들어진 습관과 지식으로부터 벗어나 탈근대적인 "모든 사람들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가지며 더불어 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평화적인 행동과 생명 중심의 지식을 구성하는 문제이다. 넬슨 만델라는 그 문제들 중의 하나를 스포츠로 보았다.

오늘날의 우리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럭비와 축구 그리고 크리켓은 서구 유럽의 근대 식민지화 과정에서 각각의 종족을 대표하는 스포츠가 되어버렸다. 럭비는 아프리카너의 스포츠이고, 축구는 흑인들의 스포츠이며, 크리켓은 영국계 백인들의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근대적 관습은 또한 크리켓을 하는 아프리카너들을 같은 아프리카너들이 비난하고, 럭비를 하는 흑인들을 같은 흑인들이 비난하는 적대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그런 근대적 관습에서 벗어나는 탈근대적 남아프리카를 만들기 위하여 1995년 럭비월드컵을 이용한 것이다.

아프리카너는 오늘 날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이나 뉴질랜드인 혹은 중남미 아메리카의 백인 이주 원주민 크레올(creole)처럼 미국과 영국의 앵글로-색슨 서구유럽 중심주의에서 소외되어 있는 백인 소수자들이다. 넬슨 만델라는 1652년부터 남아프리카로 이주하여 새롭게 아프리카너 민족을 구성한 그들의 영욕의 역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 법이 지배했던 현실 속에서 남아프리카 대부분의 흑인들에게 아프리카너들은 그들의 눈앞에 있는 명백한 적이다. 거의 350년 동안 억압받은 현실의 역사 속에서 그 적들의 축제에 함께 참여하고, 심지어 그 적들을 응원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런 현실 때문에 남아프리카의 흑인 대중은 남아프리카의 대표팀 '스프링복스'와 영국의 경기에서 영국을 응원한다. 마치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과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경기에서 남한 사람들이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눈앞에 보이는 적대적 구조 때문에 우리의 등 뒤에 있는 근대적 지배구조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대통령으로 이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먼 분)는 럭비를 통하여 백인 아프리카너와 흑인 아프리카인들을 하나의 탈근대적 국민으로 연결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먼 분)는 '스프링복스' 팀의 주장 프랑소와 피나르(맷 데이먼 분)를 프레토리아에 있는 대통령 궁으로 불러 1년 뒤의 럭비월드컵에서 우승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인간적 친분을 쌓고, 이에 대한 답례로 '스프링복스' 팀은 흑인거주 지역 타운쉽을 찾아 흑인 어린이들에게 럭비 볼을 선사한다. 만델라는 '스프링복스' 팀 연습장을 찾아 백인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그들은 만델라 대통령에게 선수복과 모자를 선사한다. 만델라는 녹색으로 상징되는 '스프링복스' 팀의 선수복과 모자를 쓰고 대중들에게 다가가 '스프링복스' 팀을 응원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한 역사적 과정은 아프리카너 백인들도 남아프리카를 구성하는 다양한 흑인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남아프리카를 구성하는 하나의 종족이라는 사실을 국민들 모두에게 각인시키는 과정이었다. 드디어 럭비월드컵은 개최되었고, 참가국들 중에서 최약체로 평가되었던 '스프링복스' 팀은 넬슨 만델라에게 우승을 선사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팀을 차례로 이기고 역대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는 뉴질랜드 팀과 결승전을 하게 된다.

뉴질랜드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하여 경기장을 찾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 이제 넬슨 만델라 대통령에게 야유를 보내는 그 어떤 우익 보수주의 백인 아프리카너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더불어 남아프리카 흑인들도 마침내 350년 동안 그들에게 총칼을 들이밀고 짐승 취급을 했던 아프리카너 백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새로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탈근대적 지도자, 넬슨 만델라의 지도력을 통하여 백인과 흑인 그리고 유색인 모두의 남아프리카인들은 서로서로 적대적이었던 근대적 남아프리카의 사회적 구조를 극복하고 탈근대의 남아프리카 국민으로 거듭난 것이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아프리카너 백인들을 자신의 국민으로 포용하였다. 그래서 아프리카너 백인 선수들은 자신들의 종족을 위하거나 자신들만을 위하여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만델라와 남아프리카 국민들에게 우승을 선사하기 위하여 경기를 한다. 그리고 만델라를 지지했던 흑인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적이었던 아프리카너 백인들을 응원해달라고 부탁하는 넬슨 만델라의 모습을 보고 아프리카너 백인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근대적 지배와 피지배 구조의 희생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들이 코사, 혹은 줄루 남아프리카인들인 것처럼 그들도 아프리카너 남아프리카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III. 넬슨 만델라는 '성자'가 아니다

넬슨 만델라는 자신을 성자(saint)로 취급하는 영국과 미국 중심의 서구 유럽 언론에 저항하여 "당신들이 성자를 죄를 씻으려고 노력하는 죄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나는 성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만델라의 이러한 말은 남아프리카에서 명성을 날리고 인도의 지도자로 우뚝 선 마하트마 간디를 "동방의 성자"로 신비화하여 인도 반도 지역을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등등으로 분할하여 지배하였던 영국의 근대 제국주의 정책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넬슨 만델라는 1960년 비폭력적 저항을 유지하였던 '아프리카국민회의(ANC)'로 하여금 비폭력적 저항과 폭력적 저항을 결합시키도록 만든 무장투쟁 단체 '음콘토 웨 시즈웨(MK: 민족의 창)'의 청년 대장이었었고, 1994년 4월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흑인들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남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근대 제국주의 식민지 역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의 역사는 서구 유럽의 자본과 권력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유방식이나 행동을 신비화한다. 그래서 지배자의 자본과 권력에 반대하는 행동이 성공하면 그것을 신비화하고, 그것이 실패하면 야만인으로 비난한다.
 

1652년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네덜란드계 백인 정착촌이 만들어진 이후로, 넬슨 만델라와 같은 남아프리카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들은 보어인들이나 영국인들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되거나, 로벤 아일랜드의 유배지에서 죽었거나, 아니면 야만인으로 취급되어 과거의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나 만델라와 그의 국민들은 각 마을들의 구술역사를 통하여 그들 모두를 기억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아프리카의 소크라테스라고 칭송되는 몰로미가 있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내부에 있는 레소토공화국의 창시자였던 모쇼에쇼에 왕이 있으며, 19세기의 넬슨 만델라라고 불리어지는 신학자이며 군사전문가이고 사상가였던 마칸다기 있었으며, 바틀로코아(들고양이) 족 여성 족장이었던 만타티시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성자가 아니라 남부 아프리카의 대지에서 대지가 만드는 오묘한 생명의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었던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지식인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우리는 단지 아주 운이 좋아 감옥에서 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를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서구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까지 알려진 것은 과거 근대의 역사를 반성하면서 서구유럽인이 되고자 하는 환상을 버리고 아프리카인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스스로 폭력적 지배 권력을 포기한 아프리카너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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