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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의 허전함과 ‘칸’의 허접한 선택
저자 김규종(경북대학교)


 <인생>의 허전함과 ‘칸’의 허접한 선택

 

                                     김규종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영화. 영화<인생>포스터.

 

1994년 '칸' 영화제는 장예모의 <인생>에게 심사위원 대상을 선사하였다. 이미 '베를린'과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수상한 터라 감독에게 이 상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인생>을 재삼재사 음미한 나로서는 영화제의 정치적 편향성을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선과 그것을 교묘하게 포착하여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가의 은밀한, 하지만 노골적인 거래일 것이다.

 

중국의 소설가 여화의 장편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영화로 각색한 것이 <인생>이다. 영화는 시간적인 순차성에 따라 40년대, 50년대 및 60년대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의 시기는 영화작가의 사회⋅정치적인 시선에 따른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시간분류와 배치는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영화 <비오기 전에 Before the Rain>의 입체적이고 은유적이며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신비한 시간경험과는 다른 차원과 의미를 제공한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 부귀는 도박에 미쳐 살아간다. 일제강점이 극에 달하던 1940년대 의식 없는 중국인 지주는 도박으로 인해 아내가 가출하고, 아버지마저 울분과 충격으로 사망하는 불운을 맞이한다. 그의 전 재산을 도박으로 앗아간 용이에게 부귀는 생존을 위한 수단을 하나 얻는다. 그림자연극 도구가 그것이다. 평소 도박 중에도 그림자연극에 큰 관심을 보였고, 재능까지 소유하였던 부귀는 이제 생활의 방편으로 그림자연극을 행상처럼 운영한다.

 

시간은 흘러서 일제는 패망하고, 국공합작은 깨지며, 대륙에서는 모택동의 공산당이 장개석 군대를 대만으로 퇴각시킨다. 장개석 군대에 붙들려 있던 부귀는 동향의 지인인 춘생과 더불어 그림자 연극으로 공산군들에게 힘과 웃음과 원기를 제공하면서 생활하다가 전쟁의 종식과 더불어, 즉 중국 공산당의 최후 승리와 더불어 무사히 고향에 귀환한다.

 

다시 시간이 흘러 1958년 '대약진운동'의 시기가 영화의 배경이 된다. 그가 목도하는 용이의 총살은 운명의 전변에 대한 직접적이며 일차원적인 영화작가의 시선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들려오는 총성을 들은 그가 전봇대를 붙들고 오줌을 누는 장면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제시한다. 부귀는 이런 삶의 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으려면 '공산당'과 결부된 배경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부귀와 아내는 그림자연극 공연으로 공산당에게서 받은 표창장을 정성스레 갈무리하여 액자에 모셔둔다. 그것이 삶의 보증수표나 되는 것처럼.

 

공장에서도 그림자 연극은 일꾼들의 사기를 앙양하는데 혁혁한 공훈을 세우며, 그것은 공장의 생산성 향상을 촉진한다. 중국은 이 시기에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엄청난 고양을 경험한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영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도달한다.

 

부귀 부부 역시 행복하다. 비록 첫 딸 봉하가 열병으로 벙어리가 되었지만, 그녀는 헌신적으로 부모에게 봉사하며, 둘째 아들 유경은 벙어리 누나에 대한 형제애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장이 학교를 방문한다는 전갈을 받은 부귀 내외는 부족한 잠으로 졸고 있는 유경을 학교로 보내지만, 그는 구장이 몰던 차에 치어 죽는다. 그런데, 그 구장은 전쟁 이후 헤어진 춘생이었다. 이 가혹한 운명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영화작가는 춘생의 삶에 내재한 운명의 전변을 조금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시종일관한 관심의 초점은 갈우 가족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춘생의 느닷없는 출현과 의미에 의아해하지만 장예모는 그것을 작은 디테일 정도로 치부하는 것처럼 당당하다.

 

영화는 1966년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노동자 출신의 사위를 맞이한 부귀 내외의 기쁨은 형언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봉하는 출산을 하다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으며, 그것의 배후에는 '문혁'이 야기한 야만성이 위치한다. 홍위병들이 산부인과 병원을 점령하고, 전문가들은 반동으로 몰려나갔기 때문에 원만한 출산이 불가능한 상황을 장예모는 섬뜩할 정도의 사실성으로 그려낸다.

 

아이의 장수를 위하여 아명으로 ‘만두’를 붙여준 부귀 내외는 그들이 그리던 희망과 성장의 도식을 바꾸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은 '문혁'이 막을 내리고, 광기와 선동의 시기가 사라진 평온한 시간이다. 이제 그들 내외도 상당히 늙어졌으며, 삶에 대한 담담한 시선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행복도식인 닭 -> 거위 -> 양 -> 소 -> 공산주의는 근본적으로 바뀐다.

 

그것은 공산주의의 부정이다. "네가 어른이 되고, 좋은 세상이 오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여기에 '칸'의 정치적인 승리가 있으며, 장예모의 아주 낮은, 키 작은 고백이 있다. 장예모는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부재하는 아름답고 평온한 세상을 향한 갈구를 설파하며, ‘칸’은 그에게 심사위원 대상을 선물한 것이다.

 

<인생>에서 거슬리는 대목은 춘생의 느닷없는 출현과 인과성의 부재이다. 마지막 시대인 60년대에도 춘생은 쫓기는 불안한 얼굴로 부귀 내외를 찾아와 유경의 죽음을 돈으로 보상하려 한다. 아내가 자살했음을 알리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동자는 그 죽음에 서려 있는 어떤 필연성이나 인과성도 부여하지 못한다. 다만 시대의 어둑한 그림자를 암시하는 일반화된 디테일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죽음이나, 춘생의 도피행각은 작은 에피소드로 전락하며, 거장이라는 호칭을 듣는 장예모의 이력에 작지 않은 흠집을 만들어낸다.

 

<인생>에는 몇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영화작가는 모든 나쁜 것, 잘못된 것을 과거로 돌려보낸다. 희망의 메시지는 미래에 있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지나간 것에는 나름의 의미와 덕목이 있는 법. <집으로 가는 길>에서 장예모 스스로가 절절하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부귀 내외의 삶에 대한 시선은 너무나 고정되어 있다. 아들과 딸의 연이은 죽음에서도 그들은 삶에 숨겨진 수수께끼와 광대한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처럼 말이다. 성찰과 자기반성이 없는 맥 풀린 인물들처럼 그들은 그려져 있다. 시대의 하수인으로서만 나타나 있는 그들은 따라서 역사적 사건을 창출하기 위한 도식적인 인간군상으로 표현되어 있는 셈이다.

 

사건을 위하여 빌려온 인간형상은 얼마나 처연한가! 그 시대가 아무리 의미심장하다 해도 시대와 대면하고 맞서면서 시대를 투사하는 인간형이 오늘의 영화 속에서 온전하게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영화가 <인생>이다.

 

그럼에도 <인생>에서 우리의 눈길을 강렬하게 잡아끄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림자 연극이다. <패왕별희>의 경극과도 마찬가지로. 이 소도구의 자유로운 활용은 '왜 그래도 장예모인가' 하는 명제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림자 연극의 소품들과 그것을 담는 통은 40년대부터 70년대 이후의 시기까지를 독특한 이력으로 살아온다.

 

그것은 생존수단이었고 (40년대), 존립기반이었으며 (50년대), 마침내는 금기의 대상이자 (60년대), 병아리를 키우는 공간으로 (70년대) 전화된다. 그러므로 이 소품들은 중요한 등장인물처럼 영화작가의 유의미한 동반자이자 친구로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문제는 소품의 번뜩임과 과포화된 주제의식의 불협화에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글은 민교협 홈페이지와 ‘오마이뉴스’에 공동으로 연재됩니다.
기사 바로 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16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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