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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바람이 분다>)
저자 김규종(경북대학교)


누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바람이 분다>)

 

                                                                                                김규종 (경북대학교)

 

 

 

 

 

 

 

 

 

 

 

 

 

 

 

 

 

 

 

 

 

 

 

영화 <바람이 분다> 공식 포스터.

 ⓒ (주)롯데엔터테인먼트

 

 

글을 시작하면서

 

재패니메이션의 선구자이자 대표주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벌써 세 번째다. 지난 9월 6일 기자회견에서 “이번에는 정말로 은퇴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올해 73세인 미야자키 감독은 10년 정도 더 일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그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것은 이제 추억여행이 될 것이 분명해졌다.

 

미야자키 감독은 월트 디즈니에 비견되는 세계적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1986년 건립한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산실이다. 그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이웃집 토토로> (1988), <붉은 돼지> (1992), <모노노케 히메> (1997),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등 불후의 작품을 만들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주장하고, 전쟁과 군국주의를 비판한 그의 반전 평화주의는 세계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2003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미야자키 감독은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훗날 그는 “이라크를 침공한 나라를 방문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반면에 그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한국에서 논란거리가 되었다.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자!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 혹은 신파?!

 

<바람이 분다>는 전투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1903~82)의 삶을 뼈대로 하고, 호리 다쓰오(1904~53)의 소설 속 사랑이야기를 덧대서 만든 작품이다. <붉은 돼지> 정도를 예외로 하면 미야자키 영화에서 남녀의 사랑이 주된 모티프로 작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소년소녀의 여린 가슴 떨림이야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겠지만.

 

1923년 9월 초하루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그날, 지로는 열차편으로 집으로 간다. 객차와 객차 사이에 앉아 책을 읽던 그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간다. 옆 칸 통로에 서있던 나오코가 지로의 모자를 낚아챈다. 그렇게 그들의 첫 번째 만남은 시작된다.

 

“잊을 수 없어요. 바람이 당신을 데려온 그 순간을!”

 

하지만 놀랍고 아름다운 순간의 대면은 지진으로 이내 사라진다.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 그들은 바람으로 인해 재회한다. 그러고 보면 <바람이 분다>에서 우리는 다채로운 바람과 만난다. 영화는 폴 발레리의 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시작한다. 바람과 함께 하늘을 떠도는 종이비행기와 전투기 역시 바람과 뗄 수 없다. 미야자키 영화에서 바람은 언제나 중요한 구실을 하지만, 여기서는 그 강도가 현저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의 서사에서 비중 있게 작용하지 않는다. 첫 만남 이후 긴 세월 잊고 지낸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따라 살아간다. 지로는 비행기 설계사의 꿈을 이루고자 도이칠란트 데사우로 유학을 다녀온다. 나오코는 그림에 대한 열망을 잊어본 적 없다. 그들이 재회했을 때 나오코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 신파 냄새가 풍긴다.

 

미야자키가 주목하는 것은?!

 

<바람이 분다>에서 우리는 성장영화 내지 전기 영화의 형식과 대면한다. 대부분의 미야자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성장기의 소년소녀지만, 그들은 제한된 시공간을 살아갈 따름이다. 그들에게서 성장과 변화라는 특징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반하여 <바람이 분다>에서는 주인공 지로의 성장과정에 묵직한 방점이 찍혀 있다.

 

영화작가는 그것을 역사적인 사건과 결부시킨다. 관동대지진과 세계경제공황, 만주사변과 일제의 동아시아 침략,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20여 년 이상의 시간이 영화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세계사적인 의미를 가지는 사건들과 호리코시 지로의 개인사적인 연관을 눈여겨봐야 <바람이 분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관동대지진 하면, 우리는 일본의 무차별적이고 야만적인 조선인 학살만행을 떠올린다. 당시에 살해당한 조선인들의 수효는 지금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국의 피해상황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화에서도 조선인 학살문제는 다뤄지지 않는다. 다만 지진의 규모와 그것이 야기한 결과를 재현할 뿐이다.

 

 

 

 

 

 

 

 영화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이런 점은 영화에서 일관되게 찾을 수 있다. 반전 평화주의자 미야자키 하야오를 찾는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의 관심은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소년 지로가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 자신의 열망을 실현해갔는지에 집중된다. 그것을 위해 영화감독은 나오코와 지로의 사랑도 부차적인 기획으로 미룬 것이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이토록 많은 일장기를 그린 적이 없다”고 감독 스스로가 고백한 것처럼 나 또한 이토록 많은 일장기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영화관의 분위기는 장마철 풀 먹인 삼베처럼 숙져 있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나처럼 불편한 기색이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나는 비행기 동체에 선명하게 그려진 허다한 일장기들!

 

더욱이 지로가 근무하는 대기업 미쓰비시는 미쓰이, 기린맥주, 파나소닉 같은 대표적인 전범기업 아닌가. 거기서 지로는 도이칠란트와 이탈리아에 버금가는 비행기를 만들어내려고 불철주야 애쓰지 않았던가! 시대와 역사의 향방과 무관하게 비행기 하나만을 위해 분투하는 혼신의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가난한가?”

 

여러 번 반복되는 지로의 대사다. 도이칠란트 비행기가 탑재한 엄청난 성능과 국가경쟁력을 부러워하던 지로의 흉중을 드러내는 대사다. 그의 내면을 울리던 일본의 가난을 나는 조금도 실감할 수 없었다. 일제에 강점당한 조선과 조선인들의 피폐한 삶, 그리고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산화한 허다한 중국인들의 삶은 어떠했던가?!

 

여러 차례 험난한 고비를 넘기고 지로가 만들어낸 제로센 전투기가 창공을 날아오를 때 장쾌함과 성취감보다는 불편함과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 것은 내가 식민지 조선을 살았던 선조들의 후예여서 그런가! 게다가 요즘 떠들썩하게 인구에 회자되는 교학사의 ‘한국사의 지독히 친일적이고 반민족적⋅반민주적인 역사서술은 또 어떤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디 있는가!

 

영화를 보면서 고인이 된 장진영과 <청연>이 떠올랐다. 2005년 한국사회를 적잖게 흔들었던 한국인 최초 여류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청연>. 박경원은 남녀차별, 식민지 조선인과 본토 일본인의 차별이 없는 창공을 열망했다. 그녀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맹신하는 무의식적인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희망을 관철하려는 근대적 ‘개인’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나는 <청연>에 공감했더랬다.

 

<바람이 분다>에서 감독은 지로의 ‘꿈’에 초점을 맞춘다. 이탈리아 비행기 설계사 카프로니 백작의 형상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로가 흔들리거나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고독으로 괴로워할 때 카프로니는 지로에게 등장한다. 기업이든 국가든 전쟁이든 꿈을 막아서는 모든 것에 굴복하지 말라고 카프로니는 힘주어 역설한다.

 

나치에게 쫓기는 도이칠란트 시민 카스트로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지로에게 모든 것을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관동대지진도, 세계대공황도, 만주사변도 다 잊으라고 한다. ‘지금’과 ‘여기’를 강조하는 나치와 군국주의자들은 반전 평화주의자 카스트로가 두렵다. 어둔 과거를 잊고 나아가라는 카스트로가 불량해 보이는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오로지 아름다운 꿈과 열망을 위해 전진하라! 과거의 슬프고 쓰라린 기억은 전부 던져 버려라! 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 그것이 카스트로의 권고였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많은 것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오히려 더욱 불편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한다.

 

종군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그는 명쾌하게 말한 바 있다.

 

“위안부 문제, 예전에 청산해야 했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죄해야 합니다. 당시 일본정부가 일본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경화로 치달리는 아베 총리는 곧 교체될 것이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그의 말은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토록 많은 일장기를 본 적도 없지만, 그토록 많은 일장기를 단 비행기들이 파멸의 잔해를 이루어 처참한 몰골로 나뒹구는 장면도 나는 보지 못했다. <바람이 분다>를 단순한 이분법, 즉 약소국과 강대국, 식민지 조선과 제국주의 일본, 선과 악으로 분별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게 두렵다.

 

● 이 글은 9월 13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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