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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정원대통령의 ‘창조경제’와 문화의 불온성
저자 홍기돈(가톨릭대학교)


 

                  국정원대통령의 ‘창조경제’와 문화의 불온성

                                               ―  김수영은 왜 촛불을 들지 않았는가

 

                                                                 홍기돈(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모든 실험적인 문학은 필연적으로 완전한 세계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진보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인 자유」)

 

오늘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읽어준 김수영 산문의 한 대목이다. 1968년 김수영은 이어령과 논쟁하면서 세 편의 글을 발표하였다. 「지식인의 사회참여」,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인 자유」, 「‘불온성’에 관한 비과학적인 억측」. 학기가 시작되기 전 강의계획서를 만들 때는 의식하지 못했으나, 학기 말에 이르러 해당 작품들을 읽다 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간대와 죽음에 이르기 얼마 전 김수영이 살아나갔던 시간대가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논쟁을 촉발하게 된 「지식인의 사회참여」는 다음 문장으로 시작된다. “외국에 다녀온 친구들이 항용 하는 말이 우리나라에는 논설이나 회화에 있어서 ‘주장’만이 있지 ‘설득’이 없는 것이 탈이라고 한다.” 외국물 먹은 친구들은 한국의 논설ㆍ회화의 수준을 개탄해서 그리 말했겠지만, 김수영은 오히려 “이런 사회에서는 ‘설득’이 미덕이 아니라 범죄”라고 반박하고 있다. “문화의 기반이 약하고, 정치적으로는 노상 독재의 위협에 떨고 있는 사회에 수반되는 현상”이므로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주장 외에 다른 어법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이와 비슷한 의미의 발언을 접한 바 있다. 12월 6일 『경향신문』에 실린 이상호 사회부 차장의 칼럼 「촛불을 끄자」. 제목에서 나타나 있듯이, 기자는 이제 촛불집회에서의 촛불을 끄자고 제안한다. 촛불집회란 “상대가 촛불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전해 듣고 보살펴 주리라는 믿음”을 전제했을 때 비로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촛불 건너편은 권력에 도취된 이들이 쌓아놓은 높은 종북 담장에 둘러싸여 아무리 외쳐도 메아리가 돌아올 수 없다.” 촛불로써 불통(不通)의 벽을 넘어설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려우니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마음을 전달하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칼럼의 마지막 문단은 이러하다. “촛불을 끄자. 그리고 차라리 빈손으로 당당하게 민주시민의 권리를 주장하자. 촛불을 켜고 애원하며 빌어야 할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고 불법 앞에 뻔뻔한 바로 저들이다.” 칼럼 내용이 민주시민의 당당한 권리 주장으로 이어질 때, 기자의 식견은 “이런 사회에서는 설득이 미덕이 아니라 범죄”라고 일갈했던 김수영의 목소리 위에 그대로 포개진다. 표현을 달리 하면, 1968년 상황으로 퇴행한 2013년의 비참한 현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인 자유」에서도 김수영이 마치 오늘날의 시국을 비판하는 듯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김수영이 판단하기에 “응전력(應戰力)과 창조력의 고갈”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유,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어령의 생각은 이와 달랐던 것 같다. 김수영의 반대편에서 “정치적 자유의 폭이 비교적 넓었던 시기의 문화현상을 ‘자유의 영역이 확보될수록 한국문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화하여 쇠멸해 가는 이상한 역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무모한 일방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덧붙이건대 문화인들의 “응전력(應戰力)과 창조력의 고갈”을 먼저 언급한 이는 이어령이었다.

 

앞서 인용했던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라는 단정은 이러한 맥락과 연관된다. 내가 보기에도, 김수영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온갖 종류의 규제와 금기가 사라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문화(인)의 역동성과 창조력은 증가한다. 예컨대 최근의 한류 열풍은 군사정권 이후 가능해진 폭넓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생각해 보라. 이념 대결만이 허용되는 사회에서 <JSA>나 <실미도>, <설국열차>와 같은 영화가 출현할 수 있을까. 따져 보라. 장발을 단속하고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단속하는 사회에서 싸이ㆍ노라조 등의 B급 코드에 맞춘 음악이 가능하겠는가.

 

박근혜 국정원대통령의 ‘창조경제’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진정 창조가 가능해지려면 많은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독불장군 마냥 주위의 우려와 비판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박근혜 국정원대통령의 태도는 제 발목을 부여잡은 형상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치부를 적당히 덮어두지 않는다고 검찰총장 찍어내는 행태도 그렇고, 무리하게 전교조의 근간을 뒤흔들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다. 그럴수록 우리 사회는 경직되게 마련이며, 그럴수록 창조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국정원대통령의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종북 이데올로기도 그렇다. 권력 비판자에게 붉은 이데올로기의 딱지를 찰싹찰싹 갖다 붙이는 데 대해서 김수영은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도 동의한다. ‘종박(從朴)’이 절대가치를 행사하는 사회에서는 자유가 위축되고, 창조력이 소멸하며, 문화가 고사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유사회의 문화풍토의 예를 보더라도 무서운 것은 문화를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동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위험의 소재(所在)도 다름 아닌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치스가 뭉크의 회화까지도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그 전위성을 인정하지 않았듯이, 하나의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문예시평>자(이어령-인용자)가 역설하는 응전력과 창조력―나는 이것을 문학과 예술의 전위성 내지 실험성이라고 부르고 싶다―은 제대로 정당한 순환작용을 갖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인 자유」)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로 올라가면서 김수영의 다른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를 떠올렸다. 수업시간에 나는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김수영은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라 인식했고, 그래서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라 주장했다고. 그렇다면 나는, 과연 살아있다고 자부할 수 있으며, 어떤 꿈을 꾸고 있노라 당당할 수 있을까. 자문과 함께 문득 자책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 부들부들 분노하면서도 겨우 문학서적에 붙들려 있고, 그런 주제에 건방지게 촛불의 무기력함을 예단하고 있으니―

김수영이 앞에 있다면 내 면상에 대고 침을 딱 뱉기 맞춤하겠다. 금방 깨지고 말 혼자만의 자유를 부여잡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바로 지금 이 순간에―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 자아 보아라, 당신도, 당신도, 당신도, 나도 새로운 문학에의 용기가 없다. 이러고도 정치적 금기에만 다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새로운’ 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시여, 침을 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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